대만 타이베이 네이후구는 한국으로 치면 서울 청담동 격인 곳이다. 엔비디아 등 쟁쟁한 글로벌 기업의 사무실뿐 아니라 대만을 대표하는 유명 갤러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계 화이트스톤 갤러리는 대만 컬렉터들에게 특별한 공간으로 꼽힌다. 로컬 갤러리가 장악하고 있는 대만 미술시장에서 유일한 해외 갤러리이기 때문이다.
화이트스톤 대만을 2017년 개관 때부터 줄곧 지켜온 사람이 있다. 바로 화이트스톤 대만의 총괄디렉터 소피 수다. ‘랍스터 캐릭터’로 유명한 영국 팝아티스트 필립 콜버트, 초대형 오리 인형 ‘러버덕’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네덜란드 설치미술가 플로렌타인 호프만, 대담한 붓터치로 세계를 홀린 일본의 젊은 화가 에가미 에쓰 등이 그와 화이트스톤을 거쳐 대만 컬렉터들에게 소개됐다.
그런 그가 지난해 ‘대만에 와서 전시를 열어달라’고 직접 부탁한 화가가 한국의 중견 작가 권순익이다. 이달 초 권 작가의 개인전 ‘시간의 틈: 오늘’ 개막을 맞아 전시장에서 만난 수 디렉터는 “대만에서 열린 한 아트페어에서 권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 봤는데, 독창적인 기법과 명상적인 분위기에 한눈에 반했다”며 “숨겨진 보석 같은 중견·신진 작가를 발굴해서 세계 무대에 알리겠다는 화이트스톤의 목표에 딱 들어맞는 작가”라고 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직 대만 미술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데도 권 작가의 작품 절반 이상이 개막 첫날 바로 팔려나갔고, 흑연을 활용한 기와 설치작품은 현지 컬렉터와 미술평론가들이 모인 오프닝 파티에서 호평받았다. 일본의 대표 건축가 구마 겐고가 디자인한 목조 전시장에 권 작가의 그림이 걸리면서 ‘한·일 예술의 절묘한 조화’라는 평가도 나왔다.
수 디렉터는 권 작가에 대한 호응이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대만 컬렉터들 사이에서 한국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서다. 그는 “대만도 한국처럼 최근 몇 년 새 MZ(밀레니얼+Z세대) 컬렉터가 급증했다”며 “신선하고 참신한 작품을 많이 찾는 만큼 한국의 중견·신진 작가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홍콩 등 아시아에 6개 지점을 갖고 있는 화이트스톤은 오는 9월 서울 남산에 서울점을 연다. 각 지점에 있는 디렉터들은 정기적으로 그 나라에서 연 전시의 반응을 공유하고, 인기가 많은 전시를 가져와 순회전을 열기도 한다. 수 디렉터는 “한 곳에서 전시를 열고 그치는 게 아니라 각국에 있는 화이트스톤 전시장을 활용해 작가가 세계적 예술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타이베이=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