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응성 소아 백혈병 완치 시대를 연 노바티스의 항암제 킴리아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이 개발해 기술이전한 겁니다. 국산 신약 개발을 늘리려면 병원 등에서 환자에게 다양한 치료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줘야 합니다.”
강형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사진)는 13일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강 교수는 국내 키메릭항원수용체(CAR)-T세포 연구를 개척한 의사로 꼽힌다.지난해 서울대병원에 국산 CAR-T세포 치료 시스템을 구축했다.
CAR-T세포 치료제는 암을 공격하는 면역 T세포에 암세포를 찾아가는 항체를 달아준 것이다. 세계 첫 CAR-T세포 치료제인 킴리아의 백혈병 완치율은 60%다. 환자를 잇따라 완치시켜 ‘꿈의 항암제’로 불린다.
킴리아를 만들려면 국내 환자의 혈액을 뽑아 미국으로 보내서 조작·배양한다. 복잡한 절차 탓에 비용은 3억6000만원에 달하고 환자는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한다. 강 교수는 이를 국산화했다. 상업용 치료제가 아니라 병원에서 시행하는 시술이다.
지난해 2월 서울대병원에서 만든 CAR-T세포를 만 18세 백혈병 환자에게 투여했다. 한 달 만에 환자 몸속 암세포가 사라졌다. 고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이 환자는 퇴원 후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서울대병원의 CAR-T세포 치료 환자는 6명으로 늘었다.
이런 치료 시대를 연 것은 2020년 시행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법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자에게 시술하려면 보건복지부 심의를 마친 뒤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추가로 받아야 한다. 해외엔 없는 이중 규제다. 강 교수는 “연구 목적 시술에 상업용 의약품 허가 기준을 적용하다보니 일선 의료진이 허들을 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미국 등 해외에선 의료기술이 일선 의료진의 연구자 임상시험을 거친 뒤 바이오·제약기업에 이전되는 게 일반적이다. 상용화된 약물은 아니지만 연구 목적으로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게 연구자 주도 임상이다. 미국은 전체 임상시험에서 연구자 주도 임상이 80%를 차지한다. 세계적으로도 67%가 연구자 주도 임상이다. 나머지가 상업화 단계 임상이다. 반면 한국은 연구자 주도 임상이 34%에 불과하다.
의료기관 등에서 기술을 개발한 뒤 기업에 이전하면 치료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도 문제다. 국내에선 기업이 상용화 임상을 시작하면 해당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는 임상 참여자로 제한된다. 강 교수는 “유럽은 병원 면제제도를 통해 의료기관 등에서 의사가 재량껏 일정 기간 치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일선 연구진이 신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기업에 자유롭게 기술이전하려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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