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도약계좌. 최근 금융권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과 함께 논란을 부르고 있는 정책금융상품이다. 청년의 중장기적 자산 형성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이 상품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포함돼 출시됐다. 지난달 15일 나온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신청자가 8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다.
연간 개인 소득이 7500만원 이하면서 가구 소득 중위 180% 이하인 만 19~34세 청년이면 이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매달 최대 70만원을 내면 정부가 적금액과 소득 수준에 따라 매월 2만1000~2만4000원을 보태준다. 예·적금 이자에 붙는 연 15.4%의 세금도 매기지 않는다. 금리는 기본금리에 소득별 우대금리, 은행별 우대금리를 더해 최고 연 6%다. 상품을 내놓은 11개 은행 모두 같다.
하지만 상품이 공식 출시되기도 전에 관치 논란에 휩싸였다. 이 상품의 취지는 가입한 청년들이 5년 뒤 최대 5000만원을 손에 쥘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이자가 최소 연 6%를 넘어야 한다. 최근 금융권 예·적금의 두 배 수준이다. 은행 대출금리(연 4%대)보다 높다. 은행으로선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품이다.
당초 기업은행을 제외한 10개 은행은 모두 기본금리를 연 3.5%로 제시했다. 적용받기 어려운 우대금리 등 여러 조건을 내걸어 억지로 최고 금리를 연 6%에 맞췄다. 은행들은 금리를 낮게 정하자니 금융당국과 여론에 눈치가 보이고, 높게 정하면 ‘쏠림’ 현상으로 역마진이 심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공식 출시를 앞두고 기본금리 비중이 작은 데다 우대금리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자 장사’로 떼돈을 번 은행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을 돕겠다는데 금리 조금 못 올려주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최종 금리 공시를 이틀 앞두고 금융당국은 은행 부행장들을 긴급 소집해 기본금리를 높이라고 압박했다. 결국 은행들은 기본금리를 연 4.5%로 올리며 백기를 들었다.
작년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은행들이 적극적인 사회공헌에 나서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장 논리와 질서를 해쳐도 된다는 명분은 될 수 없다. 구체적인 영역과 방법은 은행들이 결정해야지 정부가 팔을 비틀어 내놓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은행들은 벌써부터 청년도약계좌의 후폭풍을 걱정하고 있다. 당장 상품 판매에 따른 손실이 보수적으로 잡아도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부터 기준금리 인상이 멈추면서 은행들의 실적이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 많은 점도 부담이다.
청년도약계좌를 통한 청년층 지원이 다른 금융소비자의 손해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이 상품 판매로 은행의 평균 예금금리가 높아지면 대출금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은행들은 손실을 메우기 위해 결국 대출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청년도약계좌를 놓고 생색은 정부가 내고 부담은 은행과 해당 은행 고객이 떠안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은행들은 특정 공약과 정책을 실현하는 데 동원됐다. 이명박 정부는 녹색금융을, 박근혜 정부는 창조금융을,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금융을 추진하기 위해 은행들을 이용했다. 시장자유주의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 들어선 ‘상생 금융’을 내세워 은행들을 압박하고 있다. 시장을 고려하지 않은 이런 정부의 개입은 두고두고 부작용을 낳게 된다. 이제 더 이상의 ‘관치 금융’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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