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예산만큼 빠르게 늘어난 예산은 찾기 힘들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범한 2006년 2조1000억원이던 저출산 예산은 지난해 51조원대로 불어났다. 무려 25배가량 늘었다. 역대 정부마다 추락하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해마다 예산을 가파르게 늘린 결과다. 저출산 예산으로 잡힌 사업만 지난해 214개에 달한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오히려 추락하고 있다. 2006년 1.13명이던 한국의 출산율은 지난해 0.78명으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평균(2020년 기준 1.5명)의 절반 수준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결혼이나 출산을 늘리는 게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저출산 예산 자체가 지나치게 부풀려 있고 실제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돈을 쓰지 못한 것은 아닌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가령 저출산 예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주거지원 예산은 전체 23조원 중 40%(약 10조원)가 이자 차이만 보전하는 사업이다. 주택도시기금에서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시중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주택자금과 전세자금을 빌려주면서 이자 차이만 메워주는 것이다. 이자 차이가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1%포인트라고 가정하면 실제 들어가는 예산은 약 1000억원, 2%포인트라고 가정하면 2000억원 정도다. 그런데도 저출산 예산은 10조원으로 잡힌다. 실제 혜택보다 크게 여겨지는 착시 효과가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산업계 수요에 맞는 교육을 하는 마이스터고와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 사업, 군무원·부사관 인건비 증액, 초·중·고교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등도 저출산 대책으로 분류돼 있다. 누가 봐도 저출산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게 뻔한데도 저출산 대응 예산으로 잡혀 있는 것이다. 저출산 예산 중 절반가량이 이런 경우라고 한다.
이렇게 된 건 역대 정부에서 인구 위기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이런저런 사업을 백화점식으로 저출산 대책으로 끼워 넣은 탓이다. 정부 부처들이 예산을 쉽게 따내기 위해 실제 저출산과 직결되지 않는 사업에 ‘저출산 예산’ 꼬리표를 붙이는 사례도 많다.
이렇게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거품 예산을 걷어내고 육아휴직, 보육 지원, 아동수당 등 저출산 대응과 직결된 예산만 추려보면 작년 기준 38%인 19조5000억원 정도라고 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가 지난해 저출산 예산을 분석한 결과다.
선진국은 저출산 예산으로 출산이나 가족과 직결되는 예산만 잡는데, 이 기준으로 따지면 한국의 저출산 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6%(2019년 기준) 정도라고 한다. OECD 회원국 평균(2.29%)에 한참 못 미치고, 선진국 중 출산율이 높은 프랑스(3.44%)와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된다.
정부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저출산 대응에 총 300조원이 넘는 돈을 퍼부었다고 하지만 진짜 저출산 대책으로 쓴 돈은 이보다 적다는 것이다. 출산율이 떨어진 것은 정말 필요한 곳에 충분히 돈을 쓰기보다 보여주기식 대책에만 집중한 결과일 수 있다.
최근 저출산,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범정부 인구정책기획단이 출범했다. 기획단이 과다하게 부풀려진 저출산 예산부터 손봤으면 한다. 그런 사업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저출산 대책이 아닌데 저출산 대책으로 둔갑시켜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무늬만 저출산 대책을 솎아내고 진짜 저출산 사업에 집중해야 정말 결혼과 출산을 늘리는 데 필요한 곳에 돈을 쓸 수 있다. 그래야 저출산 대책이 효과를 낼 수 있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