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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신의 분노로 시작해 인간의 연민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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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신의 분노로 시작해 인간의 연민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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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녀석은 싸움박질밖에 할 줄 모르는구나.”

    아들을 타박하는 아버지의 이름은 ‘제우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지상과 천상을 주관하는 최고신입니다. 꾸중을 듣는 아들내미는 전쟁의 신 ‘아레스’고요.


    ‘아버지가 오냐오냐한 탓에 동생(아프로디테)이 자꾸 사고를 쳐서 뒷수습한 것’이라는 아레스의 항변에 제우스는 ‘네 놈의 성질머리는 엄마(헤라)를 닮아서 그 모양’이라고 받아칩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신들의 말다툼은 여염집과 다르지 않아 지금 봐도 웃음이 납니다.

    기원전 8세기 무렵 쓰였다는 ‘서양 문학의 기원’, 트로이 전쟁을 그린 고전, 24권 1만5693행에 이르는 대서사시…. <일리아스>를 수식하는 말은 많고 많지만, 어쩐지 고리타분할 것 같다는 오해를 주기 딱 좋죠.


    그렇다면 이런 소개는 어떨까요. 세계적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를 쓴 소설가 얀 마텔은 <일리아스>에서 영감을 얻어 쓴 새로운 소설을 내년 발표할 예정입니다. 얼마 전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하느라 한국을 찾은 그는 “지루하겠거니, 그래도 한 번쯤 읽어봐야지 하고 <일리아스>를 읽기 시작했는데 예상과 전혀 달랐다. 굉장히 세련되고 현대적인 작품이었다”고 말했어요.

    책제목 ‘일리아스’는 ‘일리오스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고, 일리오스는 트로이의 또 다른 이름이에요. 트로이 전쟁 이야기라고 하면 영웅담이나 전투 장면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만 <일리아스> 속 전쟁에는 영웅도 영광도 없습니다. 살육의 현장을 마냥 찬양하지 않아요. 작품은 10년간 끌어온 트로이 전쟁 막바지 며칠간의 얘기입니다. 병사들은 지쳤고, 그 와중에 역병까지 돌아요.



    작품 시작부터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아들인 아킬레우스는 ‘파업’ 중이에요. 전리품으로 취한 여자 포로를 빼앗겨 화가 잔뜩 났어요. 결국 그의 벗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출전했다가 트로이 왕자 헥토르의 손에 죽음을 맞습니다.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인 뒤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녀요.

    헥토르의 아버지이자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홀로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갑니다. 그러고는 아킬레우스의 손에 입 맞추죠. 자기 아들을 죽이고 욕보인 그 손에요. 그는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합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통곡해요.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보내고, 장례 기간 동안 전쟁을 멈춥니다. 트로이 사람들이 헥토르의 장례식을 치르는 데서 작품은 끝을 맺습니다.


    <일리아스>는 한마디로 말해 신의 분노로 시작해 인간의 연민으로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질투하고 분노하고 토라지는, 너무나 인간적인 신들 그리고 전쟁과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다양한 태도를 통해 삶을 성찰하게 만들 뿐입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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