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보당국이 바그너그룹의 반란 계획을 시행 이틀 전에 파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바그너그룹은 군 지도부를 생포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도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그너그룹이 모스크바 코 앞까지 빠르게 진격한 것은 푸틴 대통령의 지시에도 군 당국이 반란 진압에 미온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라는 추론에서다.
푸틴식 '분열통치' 효력 잃었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서방 관료들을 인용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 계획을 시행 이틀 전에 파악했다고 보도했다. 프리고진은 세르게이 쇼이부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참모총장이 러시아 남부 지역을 생포할 계획이었다고 WSJ은 전했다. 빅토르 졸로토프 러시아 국가방위군사령관도 전날 국영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6월 22~25일 사이에 시작될 반란 준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프리고진 캠프에서 유출됐다"고 밝혔다.서방 정보기관들도 전자 통신 감청, 위성 사진 분석 등을 통해 바그너그룹의 계획을 알아냈다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이들은 반란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계획이 유출되자 프리고진이 즉흥적으로 다른 계획을 세웠다고 분석했다.
바그너그룹은 계획 유출에도 불구하고 24일(현지시간) 반란을 감행했다.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를 장악한 이후 모스크바 500㎞ 남쪽에 있는 보로네시까지 단숨에 진격했다. 이 과정에서 바그너그룹의 사상자는 약 30명에 불과했다. 사실상 '무혈입성'했다는 분석이다. 서방 관료들은 이를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이 흔들린 증거로 보고 있다. 바그너그룹의 진격경로에 있는 정규군이 반격 명령을 받고 싸웠다면 로스토프 등이 손쉽게 함락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서방 정보당국들은 프리고진은 세르게이 수로비킨 항공우주군 사령관 등 군 고위장교들에게 반란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앞서 뉴욕타임즈(NYT)는 "수로비킨 장군이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며 "이는 러시아군 지도부가 분열됐다는 증거"라고 보도했다.
크렘린궁은 이러한 보도를 부인했지만, 이날 수로비킨 사령관을 반란 혐의로 체포하고 구금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국방부 관료 출신의 미하일 즈빈추크는 바그너 반란으로 인해 러시아 군대에 대규모 숙청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이 군과 정보당국 등을 통제하는 '분열 통치' 방식에 균열이 생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군의 각 세력을 대립시켜 이른바 '충성 경쟁'을 유도했는데, 이번 반란에서는 군 세력 간의 대립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하일 카시아노프 전 러시아 총리는 CNN 인터뷰에서 "러시아 엘리트들이 푸틴 대통령을 더 이상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중재자가 아니라 약한 지도자로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중동에 긴급 연락 "반란 영향 없다"
러시아는 프리고진이 반란을 멈춘 당일 바그너그룹과 연관된 아프리카·중동 국가들과 소통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그너그룹을 통해 만든 역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인 것이다.WSJ에 따르면 러시아 외무부 차관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로 가서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면담했다. 이 차관은 바그너그룹이 시리아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아사드 대통령에게 직접 전했다. 러시아 외무부 고위 관료들은 앙드레 콜링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통화해 반란 사태가 러시아의 아프리카 진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비상사태부 소속 제트기는 말리를 왕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그너그룹은 아프리카에서 연간 수억 달러의 수익을 거두고 있으며,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요 자금원 중 하나라는 게 서방 정보당국의 설명이다. 수단에서 금을 러시아로 수출하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UAE(아랍에미리트연합)로 다이아몬드를, 파키스탄으로 목재를 수출하는 등 이권 사업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바그너그룹은 상응 조치로 독재정권을 위한 보안군을 제공했다. 최근에는 중남미와 카리브해까지 활동 반경을 넓혔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