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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반도체 제조사 엔비디아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추진하는 대중국 AI(인공지능) 반도체 수출통제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미국 기업들이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인 중국에서 주도권을 잃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콜레트 크레스 엔비디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8일(현지시간) 웨비나에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AI칩 판매를 금지할 경우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미국 산업이 경쟁하고 주도할 기회를 영구적으로 잃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즈(FT)와의 인터뷰에서 "수출 통제로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손이 묶인 상태"라며 "중국 시장을 뺏기면 대안이 없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AI용 고성능 반도체에 대한 대중국 수출 통제를 확대하는 데 따른 반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내달 초부터 저성능 AI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엔비디아의 A100 등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데 이어 규제 범위를 더 넓히겠다는 것이다. 규제를 피해 최신 제품보다 성능을 30% 가량 낮춘 엔비디아의 A800, H800 등 GPU도 수출길이 막힐 것으로 보인다.
상무부는 중국 AI업체가 미국의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도 금지하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레스 CFO는 역사적으로 엔비디아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의 약 20~25%가 중국 시장에서 거뒀다는 점도 언급했다.
게임과 영상 작업 등을 위해 설계된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는 최근 AI의 발달로 재조명되고 있다. 딥러닝을 위해서는 특정 연산을 수없이 계산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순서대로 계산을 처리하는 CPU(중앙처리장치)보다 병렬적으로 연산하는 GPU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CNBC는 "인공지능에 연료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점점 더 요구되면서 엔비디아의 고성능 반도체가 특히 중요해졌다"고 평가했다.
엔비디아가 AI 반도체 수출통제에 반기를 들면서 기업과 정부 간 대립이 노출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치권은 '중국 견제'를 주장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기업 이익 훼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WSJ은 바이든 행정부의 수출통제 정책을 "중국에 강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유권자들은 대중국 강경정책을 선호하고,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관대하다고 비판하는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수출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조치가 엔비디아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튜 프리스코 에버코어 ISI 애널리스트는 "AI의 세계적인 확산과 핵심 조력자로서 엔비디아의 위치를 고려할 때 이것(AI 반도체 수출통제)이 상승세를 꺾을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라며 "AI 고속도로에 약간의 과속방지턱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도시야 하라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 역시 "중국 밖에서 회사가 이용할 수 있는 상당한 성장 기회를 감안할 때 중장기적으로 엔비디아의 일관된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엔비디아 주가는 AI 반도체 수출통제 소식이 알려진 이날 뉴욕증시에서 1.81% 내린 411.17달러로 마감했다.
한편 대중국 수출통제의 영향을 받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제조사 ASML는 중국과의 디커플링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 비즈니스책임자는 이날 FT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에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협력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했다. ASML은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노광 장비를 제조하는 회사다. 바이든 행정부는 ASML의 주력 품목인 극자외선(EUV) 노광기의 대중국 수출을 지난해 10월부터 제한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