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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칼럼] 죽고 사는 경쟁력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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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당연시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대(對)중국 경상수지가 21년 만에 적자로 떨어졌다. 2021년 234억1000만달러 흑자에서 약 312억달러 감소한 77억8000만달러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대미국 경상수지 흑자가 222억5000만달러 늘고, 대일본 경상수지 적자가 44억2000만달러 줄었지만 대중국 경상수지 감소폭에 미치지 못했다. 정부 설명대로 외교적 갈등이 아니라 중국이 중간재 등의 경쟁력을 키운 결과라면 이는 곧 한국의 경쟁력 상실을 의미한다. 스스로 탈(脫)중국하는 것과 경쟁력을 상실해 탈중국당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대미국, 대일본 경상수지 개선이 앞으로 계속되리란 보장도 없다. 미국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제 또 경상수지 흑자를 문제 삼을지 모른다. 반도체의 경쟁 구도가 달라지고 있는 점도 변수다. ‘칩4’라고 하지만 미·일만 이로운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한국으로선 경쟁 상대가 늘어난 형국이다. 초거대 인공지능(AI)을 앞세운 미국 빅테크가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를 장악하는 순간 대미국 경상수지 패턴이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엔화 약세도 심상찮다. 대일본 경상수지를 악화시킬 요인인 데다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해외 시장에서 불리하다. 한국의 경쟁력 고민이 한층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경상수지는 298억3000만달러 흑자였지만 전년에 비해 554억달러 줄었다. 올해는 경상수지가 164억달러 흑자에 그칠 것이란 게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이다. 상품 흑자로 서비스 적자를 메우던 경상수지 구조에 한계가 오자 당장 서비스업을 수출산업으로 키우자는 주장이 나온다.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이지 못한 결과라는 자인이다.

되돌아보면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이나 외쳐온 서비스업 경쟁력이다. 그동안 뭘 한 것이냐는 관점에 서면 잃어버린 10년이나 20년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올해 한국의 성장률은 1%대로 추락할 것이란 전망이다. 1960년대 이후 2차 오일쇼크,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확산기를 제외하면 2.0% 이상 성장률로 달려온 한국이다. 모든 것을 외생변수나 전 정권 탓으로 돌리면 경제를 바꿀 동력이 생겨날 수 없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2023년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64개 조사 대상 국가 중 28위로 떨어졌다. 2년 연속 하락이다. 순위가 오르면 정권의 치적이라고 하고 내려가면 변명을 늘어놓는 정부 모습은 달라진 게 없다. 변해야 할 때 변하지 못한 대가라고 해석해야 백번 맞는다. IMD 평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또 있다. IMD가 평가한 한국의 디지털 경쟁력 8위(2022년), 인재 경쟁력 38위(2022년)와 국가 경쟁력 28위를 딱 놓고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그대로 드러난다. 왜 국가 경쟁력은 디지털 경쟁력을 쫓아가지 못하는가. 인재 경쟁력을 높이지 않고 국가 경쟁력 추락을 막을 수 있는가.

디지털 전환과 인재는 개인과 기업 차원에서 더욱 절박한 이슈다. 초거대 생성형 AI 물결로 전 산업에서 경쟁 환경이 요동치고 있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에 재빨리 올라타는 기업도 있지만, 그동안 지켜온 ‘핵심 역량(core competency)’이 언제 ‘핵심 경직성(core rigidity)’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확산하고 있다. 미국 빅테크의 공세를 생각하면 내일 당장 국내 대기업과 네이버·카카오 등의 빅딜이 나와도 전혀 놀랍지 않을 상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근로자가 된 후 지적능력이 가장 빠르게 감퇴하는 나라로 찍힌 한국에서 개인의 불안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교육투자 가성비도 나쁘다. AI에 백전백패할 교육으로 AI를 맘대로 활용하는 해외 인재를 당해낼 방도가 없다. 실리콘밸리에선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면 당신은 이미 실패자”란 농담이 나돈다는 판국이다. 한국은 대학 입시 킬러문항으로 시끄럽다.

먹고 사는 차원을 넘어 죽고 사는 문제가 된 경쟁력의 위기다. 아사다 이키라의 <도주론>이 재해석되는 요즘이지만, 변하지 않으면 도망칠 곳도 없다.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더는 미룰 수 없는 결단의 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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