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뜻을 표했다’는 비틀어 쓰는 말
그런데 의미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문장이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근로자가 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하면 기업이 차별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목해야 할 곳은 ‘차별했다는 지목을 받은 사람이~’ 부분이다. 이는 글쓰기에서 흔히 범하기 쉬운 ‘관형어 남발’의 한 유형이다.원래 우리 어법은 이런 경우 ‘차별했다고 지목받은 사람이~’처럼 쓴다. 이때 ‘-고’는 앞말이 간접인용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부사격 조사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서술동사가 뒤를 받치게 돼 문장에 운율이 생긴다. 그런데 이를 관형어화해 ‘차별했다는 지목을 받은~’ 식으로 쓰는 이들이 많다. 이런 일탈적 어법은 정치적 표현에서 활발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게 ‘~라는 입장을 밝히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부회장 가석방에 대해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며 ‘국민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스문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법이다. ‘입장’을 이상하게 풀어낸 형태인데, 이 역시 자주 나오는 오류다.
그렇다고 새삼 일본에서 건너온 말 ‘입장’을 쓰지 말자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입장’이란 말의 정체를 비롯해 그 용법을 여기서 다시 건드릴 필요는 없다. 우리말에서 이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유용성도 나름대로 갖춘 말이다. 오늘 ‘입장을 밝히다’ 표현을 다시 꺼내는 까닭은 말을 비틀어 쓰지 말자는 뜻에서다. 단어가 아니라 표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관형어 대신 부사어 써야 ‘힘있는 문장’
이 표현은 글을 늘어지게 한다. 또 의미를 모호하게 하기도 한다. 커뮤니케이션의 성공 여부는 말을 얼마나 명료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느냐에 있다. 더구나 그것이 글말이라면 간결함도 갖춰야 한다. ‘~라고 말했다’고 하면 그만인데 이를 ‘~라는 입장을 밝혔다’ 식으로 쓰는 것은 누가 봐도 구태의연하다. 말한 것은 ‘말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입장’이 들어갈 필요도 없고, 거기에 ‘밝혔다’고 쓸 이유는 더더욱 없다. 잘못된 글쓰기 습관이 우리말을 망가뜨리는 사례다.관형어 남발을 줄이고 부사어를 살려 써야 문장에 힘이 붙는다. ‘부사어의 관형어화’ 현상이 가져오는 여러 부작용 중 하나는 문장을 권위적으로 읽히게 한다는 점이다. 대개 정치권 인물이거나 대기업 총수 등 사회지도층 인사가 등장하는 문맥에서 이런 표현이 잘 나온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사과할 때는 그냥 ‘사과했다’라고 하면 된다. 이걸 ‘사과의 뜻을 표했다’느니 ‘사과 의사를 전했다’느니 하는 식으로 비틀어 쓴다. 문어체는 좋게 말하면 격식체라서 일상적 대화에서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 많다. 이것을 마치 점잖고 격식을 갖춰 말하는 것으로 아는 이들이 꽤 있다. 하지만 이는 ‘건강한 문장’이 아니다. 잘못된 글쓰기 습관일 뿐이다. 행위자의 의도를 직접 표현하지 않고, 완곡하게 돌려 말하는, 일종의 정치적 표현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서의 언급, 외교적 언급, 고위층의 발언 따위에서 이런 게 많다는 점에서 권위적 표현의 잔재이기도 하다. ‘사과(감사)의 뜻을 전했다’ 식 표현을 버리고 곧바로 ‘~라고 사과했다/고맙다고 했다’라고 쓸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