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한복판의 세종미술관은 지금 운동화로 가득 차 있다. 무려 800켤레. 별생각 없이 미술관 문을 연 사람은 여기가 신발 가게인지, 전시장인지 헷갈린다. 전시 제목은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대형 스니커즈 전시다.
이 전시는 영국 런던 디자인 뮤지엄 월드투어전의 일환이다. 첫 전시부터 총괄한 큐레이터 리가야 살라자르도 함께 방한했다. 살라자르 큐레이터는 나이키 운동화를 메인으로 내세운 이유에 대해 “스니커즈를 하나의 문화로 만든 브랜드인 데다 끊임없이 신상품을 내놓으면서 유행을 선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표작은 ‘에어 조던’ 컬렉션. 에어 조던 시리즈는 1985년 첫 발매 후 수많은 이들을 열광시키며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됐다. 이번 전시에는 전 세계에 단 12켤레만 있는 모델도 나왔다. 나이키가 일반인이 아닌 자사 운동화 디자이너 12명에만 판매한 것으로 알려진 이 신발의 리셀가는 8000만원이다.
세상을 들썩이게 한 운동화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모델명은 ‘사탄’. 이 스니커즈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디자인 그룹 ‘미스치프’가 유명 래퍼 릴 나스 엑스와 함께 만들었다. 나이키 ‘에어맥스 97’ 모델의 밑창을 뜯어 실제 사람의 혈액을 집어넣어 봉합했다. 이에 분노한 나이키는 미스치프를 상대로 소송을 내며 대응했다. 결국 ‘사탄’ 스니커즈는 판매를 중단했다. 이들은 이 사건을 겪으며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그렇게 만든 운동화가 ‘지저스’다. 피 대신 요르단강에서 끌어온 성수를 밑창에 집어넣어 제작했다. 선과 악을 주제로 한 사탄과 지저스 세트도 ‘한국 나들이길’에 올랐다.
런던 디자인 뮤지엄은 이번 전시를 위해 아예 작은 전시관 하나를 통째로 구성했다. 한국의 스니커즈 문화를 담아낸 ‘서울’ 섹션이다. 노랗게 칠한 벽을 국내 컬렉터가 모은 운동화로 빼곡히 채운 ‘아워 월’은 서울 섹션의 핵심 작품이다. 이 벽에 걸린 운동화는 총 364족. 그리고 옆에 거울을 설치해 관람객의 신발을 비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신발을 포함하면 모두 365개의 스니커즈가 한눈에 들어온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