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등 수도권에서조차 초고층 랜드마크 조성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공사비 부담과 경기 불확실성 등이 큰 상황에서 용도 제한 등 까다로운 인허가 조건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공사비가 천정부지로 늘어나는 ‘초고층 랜드마크’ 구상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5년째 표류하는 DMC 랜드마크
19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15일 접수가 마감된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랜드마크’ 용지 매각이 유찰됐다. 사업설명회엔 다수의 건설사와 시행사가 참석했지만 정작 신청서를 낸 곳은 한 곳도 없었다.이 사업은 2030년까지 상암동 일대에 서부권 경제 활성화와 중심 기능을 강화할 첨단 복합 비즈니스센터를 건립하는 내용이다. 면적만 총 3만7262㎡로 예정 가격은 8253억원에 달한다. 앞서 서울시가 2004년 133층 초고층 건물을 짓기로 하고 사업자 선정까지 마쳤지만, 2012년 토지 대금 연체 등으로 매매계약이 해제됐다. 이후에도 매각이 유찰되며 사업이 난항을 겪어왔다.
서울시가 7년 만에 야심 차게 재추진한 매각이 외면받은 것은 엄격한 사업 신청 자격과 제한적인 용도, 초고층 건물에 대한 공사비 압박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서울시는 입찰공고에서 해당 부지를 랜드마크빌딩의 규모 및 상징성을 위해 건축법상 ‘초고층 건축물’로 짓도록 주문하면서 주거 용도는 지상층 연면적의 20%로 이하로 제한했다. 초고층 건축물은 층수가 5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200m 이상이어야 한다. 사업 참여를 검토한 업계 관계자는 “초고층 건물로 지을 경우 3.3㎡당 공사비가 1500만원 이상 든다”며 “강남, 여의도 등 핵심지역이 아닌 곳에 사무용 위주로 초고층 건물을 지어 수익을 남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자본금 기준도 지나치게 높았다는 평가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 총사업비의 10% 이상의 초기 설립 자본금을 넣은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야 한다. 사업 규모를 감안하면 설립 자본금만 수천억원에 달한다.
수익성 난망…‘초고층 포기’ 지적도
초고층 랜드마크 사업은 상대적으로 사업성이 좋은 수도권에서조차 줄줄이 지연되고 있다. 국내 최고층 전망 타워를 짓는 인천 청라시티타워(조감도) 사업은 시행자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난 4월 사업비 증액 문제로 민간 사업자인 청라시티타워와의 협약을 해지했다. 이 사업은 청라국제도시 호수공원 중심부 3만3000㎡ 부지에 높이 448m 규모의 초고층 전망 타워와 복합시설을 짓는 것으로, 2008년 국제공모설계를 시작했다.당초 민간사업 시행자를 선정해 추진한 기존의 사업 방식을 LH가 직접 시공사를 선정해 건설하는 것으로 변경한 뒤 진행할 방침이다. 하지만 원자재값 인상과 물가 상승 등으로 공사비 자체가 천정부지로 늘어 사업 추진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민간사업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현대차그룹 사옥이 들어서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부지는 2019년 지하 7층~지상 105층, 569m 높이로 건축 허가가 난 이후 4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현대차에서 지상 50층, 3개 동으로 변경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알려졌지만, 서울시에 정식 제출하지는 않았다. 지난해 3월 ‘서초로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돼 초고층 개발이 가능해진 롯데칠성부지도 개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토지비만 2조6000억원으로 추정되는 금싸라기 땅이지만 창고로 쓰고 있다.
업계에선 거시환경과 공사비 등을 감안하면 앞으로 초고층 사업을 추진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했다. 개발업계 관계자는 “3.3㎡당 1억원에 달하는 고가 아파트를 분양하지 않는 이상 웬만한 용적률 인센티브로도 수익을 맞추기 어렵다”며 “국가가 직접 돈을 투입하거나 층수보다는 다양한 디자인을 적용한 랜드마크 개발이 더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