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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사우디 왕자 4000명 제친 '왕세자 빈 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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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일원이었다. 그게 특별함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사우디 왕가는 1만5000여 명에 이른다. 왕자만 약 4000명 있었다. 소년이 왕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소년의 이름은 무함마드 빈 살만. 앞 글자를 따 ‘MBS’라고 불린다. 1985년생으로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으나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를 통치하는 실권자다. 그는 미국조차 애정 공세를 펼치는 사우디의 총리다. 빈 살만의 등극은 2015년 그의 아버지가 79세라는 너무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미국에선 2020년 무렵 그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왔는데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빈 살만의 두 얼굴>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다. 2014년 말부터 2018년 말까지 그가 사우디를 넘어 세계 정치계의 실력자로 부상한 과정을 다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함께 일했던 두 명의 기자가 썼다.

이제는 빈 살만에 관해 많은 것이 알려졌기에 아주 새로운 내용은 없다. 하지만 영화 같은 생생함만으로도 읽는 맛이 있다. 빈 살만을 이해하려면 사우디 왕가의 실상을 알아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1932년 세워졌다. 초대 왕인 압둘아지즈 알사우드가 40명이 넘는 아들을 낳은 까닭에 지금까지도 그의 아들들이 왕위를 이어받고 있다. 왕가 일족은 대부분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더 많은 돈을 얻어 호의호식할까가 중요했다.

2015년 숨을 거둔 제6대 왕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는 죽기 며칠 전 자신을 찾아온 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F-15 파일럿이라는 내 아들 좀 보게. 저 녀석이 얼마나 뚱뚱한지 좀 봐. F-15 안에 들어가기나 하겠냐고!” 국가방위부 장관을 맡은 다른 아들은 임무보다 경주마에 더 관심이 많았다.

또 많은 왕자가 외국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사우디적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모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거들떠보지 않은 채 해외에서 휴가를 즐기거나 학위를 따느라 바빴다. 그런 점에서 리야드의 킹사우드대를 졸업한 빈 살만은 이질적인 존재였다.

‘집에 돈이 없다’고 느낀 점도 빈 살만을 다른 왕자들과 다르게 만들었다. 아버지 살만은 왕이 되기 전 정치적으로 큰 권력을 얻었지만 왕가의 기준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적은 재산을 가졌다. 다른 왕족들이 돈을 불리는 동안 살만은 나라에서 지급하는 수당에 의존해 생활을 꾸려나갔다. 만약 아버지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다면 생계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그런 불안은 열여섯 살의 빈 살만이 금화와 시계를 판 돈 10만달러로 주식 투자에 나서게 했다.

책은 예멘 반군과 전쟁을 벌이고, 억압적인 문화적 관습을 깨부수고, 손정의와 만나 비전펀드를 조성하고, 비판적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를 암살하는 등 빈 살만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다. 개혁가이기도 하지만 난폭하고 무자비한 두 얼굴의 사나이다.

이제는 익히 알려진 이야기에다 책이 미국에선 3년 전에 나왔다는 한계가 있지만 ‘요주의 인물’인 빈 살만을 파악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 그가 선출된 공직자처럼 몇 년 임기를 채운 뒤 사라질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심지어 아직 왕위에 오르지도 않았다. 그는 앞으로 10년, 20년, 어쩌면 30년 이상 전설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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