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뒤에 숨은 주인의 속내를 모르겠네요. 함부로 좋아하지도 못하겠어요"
자칭 '랜선 집사'인 직장인 권모 씨(26)는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평소 자신이 응원하던 한 '스타 반려견'과 관련해 "반려견을 돈벌이에 이용했다"는 논란이 일더니, 돌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널 4개가 모두 삭제됐기 때문이다.
권 씨는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지만, 알레르기를 앓는 가족이 있어 키우기 어려운 탓에 평소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스타견들로 대리만족해 왔다"면서도 "아무래도 반려견은 직접 유튜브를 운영하기 어려우니 주인들이 운영할 텐데, 그 주인들이 돈을 위해 유튜브를 시작한 건지, 반려견을 위해 시작한 건지 알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고 했다.
'랜선 집사' 됐는데…내 돈 어디 쓰이나 봤더니 '경악'
최근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과 반려동물 가구 수의 증가로 '펫플루언서(반려견을 키우는 인플루언서)'들이 늘어난 가운데, 랜선 집사로 불리는 '뷰니멀'들의 심리를 악용한 반려견 보호자들이 잇따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뷰니멀'은 본다는 의미의 영어 단어인 '뷰(view)'와 동물을 뜻하는 '애니멀(animal)'의 합성어로, 동물을 직접 키우지 않고 온라인상에서 영상 등을 반려동물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을 뜻한다.
'스타 반려견'들을 따르는 뷰니멀족이 늘어나자 이들을 대상으로 달력, 휴대폰 그립톡, 카카오톡 이모티콘 등 굿즈를 판매하는 펫플루언서들도 등장했다. 구독자 약 81만4000명을 보유한 한 스타 반려견은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만들고 출시한 지 일주일도 안 돼 인기 이모티콘 순위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른 스타견들도 유명세에 힘입어 포토 북이나 에세이 등을 출간해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가수와 배우처럼 팬 미팅을 여는 사례도 생겨났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들어 뷰니멀족이 보내는 관심과 성원을 악용하는 사례가 속속 나타나기 시작한 것. 대표적으로 팔로워 86만명(유튜브 13만, 인스타그램 28만, 트위터 45만)을 보유해 '스타견'으로 불리던 '이웃집 백호'의 계정들은 지난 9일 웰시코기 백호의 견주가 백호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뒤 모두 삭제됐다.
지난 6일 희귀암을 앓던 백호가 사망한 이후 굿즈 판매 수익 기부 여부와 백호 항암 치료를 위한 상품 판매 수익금 사용처 등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 지난해 12월 백호가 종양 제거 수술 후 아픈 사실을 숨기고 팬 미팅 참가 모집을 한 데다, 수술 9일 만에 팬 미팅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후 백호 보호자는 백호 치료비 모금을 위해 제작한 상품 판매 수익금 논란과 관련, "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단가를 낮추기 위해 생산자와 협의로 함께 판매했다"며 "첫 번째 판매분은 백호의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사용했으며, 추가 판매 건에 관해서는 수익금이 정산된 부분에 있어 300만 원 정도의 사료를 기부했고 정산이 추가로 된 부분이 있어 500만원을 추가 기부했다"고 해명했다.
항암치료 중인 백호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팬 미팅을 개최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백호가 아프고 난 뒤 목욕 시기, 백호가 좋아하는 것을 해줘야 하는 시기, 백호가 외출하는 시기까지 모든 행동은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 하에 이뤄졌다"며 "백호가 누나들을 만날 수 있게 배려 부탁드린다고 했고 (주치의 선생님도) 이를 수용해 주셨다"고 설명했다.
백호 보호자의 해명에도 일각에서는 '제2의 택배견 경태 사건'이라는 말이 나온다. '택배견 경태' 사건은 한 30대 커플이 반려견의 가슴 아픈 사연을 내세워 팬들로부터 6억원이 넘는 후원금을 가로챈 사건이다. 앞서 이들은 반려견 '경태'와 '태희'의 병원 치료비가 필요하다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이들은 "(반려견) 경태와 태희가 최근 심장병을 진단받았다"며 "누가 차 사고를 내고 가버려 택배 일을 할 수 없게 됐다"고 글을 남기고 호소하는 방식으로 후원금을 모았다.
이후 이들이 받은 후원금은 빚을 갚거나 도박하는 데 쓴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전직 택배기사 A씨(34)와 그의 여자친구 B씨(39)는 지난해 3월 말부터 4월 초 사이 인스타그램 '택배견 경태' 계정을 통해 1만2808명에게서 6억1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1심에서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각각 징역 2년과 7년을 선고받았다.
각종 논란에도 '스타 반려견' 인기 있는 이유
반면 일부 계정에서는 실제로 굿즈 판매 수익금을 꾸준히 유기견 보호소에 기부하는 등 선행을 이어가고 있다. 구독자 213만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루퐁이네'는 매해 달력 굿즈를 판매해 가족이 없는 반려견들을 돕고 있다. 이 채널 운영자는 "지난해 수익금 전액과 채널 수익금 일부를 더해 사료 20톤(t)을 구입해 유기견 보호소 10곳에 기부했다"며 "루퐁이를 사랑해 주신 분들 덕분에 보호소 친구들이 잠시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됐다.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뷰니멀족 입장에서 스타 반려견들을 소비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장점도 있다. 온라인상에서 남들이 키우는 반려동물의 사진, 동영상 등을 보거나 반려동물 키우기와 관련된 게임을 하며 이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받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에 대한 걱정, 식구들의 반대, 동물과 관련된 알레르기 등의 이유로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스타 반려견들이 대리만족과 스트레스 해소의 대상이 된다는 평이다.
직장인 강모 씨(26)는 "집안 사정으로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데 일과로 지칠 때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들어가서 귀여운 반려견 유튜버들의 영상을 본다"며 "대리만족도 하고 가끔 휴대폰 그립톡이나 에세이 등 굿즈가 나오면 사기도 한다. 직접 키우는 강아지가 아니더라도 애정을 가지게 되고,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말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