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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입맛 맞춘 누룽지까지 만들었는데…" 허탈한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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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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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중국에 누룽지 수출을 추진했던 한 식품 제조기업 A대표는 중국 측 협상 파트너가 갑작스레 협상을 전면 중단하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기업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내정간섭성 발언이 파문을 일으킨 직후 중국 바이어로부터 일방적으로 미팅을 무기한 연기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이 업체 대표는 "올 초 중국 쪽에서 만나자는 제안이 먼저 들어왔고, 현지 관계자가 한국에 방문해 공정을 직접 본 뒤 계약 조건을 조율하던 중이었다"며 "중국인 입맛에 맞춘 누룽지 레시피까지 연구했는데 한·중 관계 악화 탓에 사실상 수출이 무산돼 허탈하다"고 말했다.
    중국 진출 중소기업들 극도의 긴장 상태
    지난 8일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것에 베팅하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싱 대사의 폭언으로 한·중 간 외교 마찰이 심화하면서 중국과 거래가 많은 기업에 불똥이 튈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2의 사드 보복 사태가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관 주도 불매운동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중국 시장의 특성을 잘 아는 현지 진출 기업들은 극도의 긴장 상태다. 화장품을 생산해 중국으로 수출하는 한 중견 바이오 B사는 논의 중이던 주재원 파견 여부를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양국 관계가 심상치 않자 무리하게 중국 시장 비중을 높일 분위기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 회사의 마케팅 담당 임원은 "중국이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을 시작한 이후 현지 판매량이 늘었지만, 한국 화장품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며 "싱 대사의 발언을 듣자마자 직감적으로 중국 시장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느꼈다"고 했다.


    한때 마스크팩으로 중국 시장을 휩쓸었던 C사도 "이제 중국 시장은 사실상 막혔다고 본다"며 "일본과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회사는 중국으로 가는 물류가 막힐 것으로 보고 대일 수출 비중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미·중 대립 장기화로 중국 의존도를 줄이던 기업들은 싱 대사의 폭언이 탈(脫)중국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부품사인 D사 관계자는 "이미 중국에 운영하던 현지 법인 규모를 축소했다"며 "싱 대사 발언으로 한·중 관계가 계속 악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정치적 리스크가 덜한 베트남으로 관련 인력을 확충할 생각"이라고 했다.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에 있는 한 중견기업의 중국 법인장은 "제조기업들은 이미 중국에서 발을 뺀 지 오래"라며 "중국 시장을 버릴 수 없어 관계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어떤 후폭풍이 몰아칠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페인트 업계도 사태를 주시하며 장기적으로 중국보다 정치적으로 안정화된 베트남 공장에 힘을 주겠단 입장이다.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도 사태 추이에 촉각
    중소·중견 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도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대기업 중국 사업 담당 임원은 "중국이 제2의 한한령(限韓令)·사드 보복 조치에 나설까 조마조마하다"며 "중국 사업이 부진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싱 대사 폭언 이전에도 정치적 이유로 한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해왔다. '궈차오(애국주의 소비)' 열풍 등의 영향으로 삼성전자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010년대 20%대를 기록했지만, 올 1분기엔 0.8%대로 추락했다. TV 시장 세계 1위인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중국 TV 시장 점유율은 1%대에 머물렀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16년 중국에서 자동차 178만대를 팔았지만, 사드 보복이 가시화된 이후 판매량이 급감, 지난해에는 34만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1994년 중국에 진출한 롯데그룹은 지난해 마지막 중국 점포인 청두점을 매각하며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그런데도 싱 대사는 중국 시장에서 한국기업의 부진을 두고 '한국 탓'만 했다. 그는 지난달 11일 세종연구소 초청 특강에서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줄어든 것은 한국 기업들이 변화하는 중국 소비시장 흐름을 파악하지 못했던 탓"이라며 "한국 정부와 기업은 중국 소비시장의 트렌드 변화를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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