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중소기업에 ‘환율효과’가 사라졌다. 최근 두 달 이상 달러당 1300원대의 원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외형적으론 수출 기업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하지만 중기 현장에선 ‘환율 상승=수출 확대’라는 전통적 공식이 적용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글로벌 수요 감소, 원자재 가격 인상 등으로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이익을 기대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알루미늄 소재로 통신제품 및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S사는 올 들어 중국 수출 물량이 70% 줄고, 일본 수출도 30% 넘게 감소했다. S사 대표는 “미·중 갈등 여파로 중국 내수시장이 위축되면서 수출이 급감했다”고 전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수출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올 1분기 수출 실적이 ‘감소했다’(40.1%)는 응답이 ‘증가했다’(31.7%)는 답변보다 많았다.
원자재 가격 인상이 이어지는 점도 수출 중소기업의 고통을 가중하고 있다. S사는 주원료인 알루미늄이 가격 급등 후 안정세를 보이지 않아 발을 구르고 있다. 런던금속거래소(LME) 기준 알루미늄 가격은 통상 t당 1800달러 선이었으나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t당 3000달러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이후에도 t당 2200달러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김아린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원유, 천연가스 등 원자재 공급망 교란에 취약하다”며 “원자재 가격과 원·달러 환율이 동시에 상승하면서 기업의 원자재 수입 부담이 가중하고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 제품의 경우, 판매원가에서 원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58.6%(중기중앙회 분석)에 이른다. 김철우 중기중앙회 국제통상실장은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은 환리스크 관리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원화 약세 이상으로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가 떨어진 것도 불리한 여건이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21년 이후 엔화가 주요국 통화 가운데 달러화 대비 가치가 가장 많이 떨어졌다”며 “원화 가치 하락 효과가 일본 수출에선 전혀 나타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데이터 기업인 명정보기술의 이명재 대표는 “달러화로 표시되는 일본의 임금 수준이 하락하면서 일본의 무역파트너가 한국 근로자보다 일본 근로자 채용을 고려하라고 조언할 정도”라고 했다.
국내 수출기업의 품목이 환율 민감도가 떨어진 기술집약형 고품질 제품으로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10년 전인 2013년만 해도 중소기업 상위 수출 품목에 가격 민감도가 큰 자동차부품, 플라스틱제품, 합성수지, 편직물, 섬유 등이 자리했지만 올 1~4월에는 자동차, 반도체 제조용 장비, 반도체, 전자응용기기 등 하이테크 제품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 원장은 “국내 기업이 중국산 제품과 경쟁하는 ‘수출 유사성’을 피하기 위해 점차 품질 경쟁 위주로 수출 품목을 옮겨간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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