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확인 때 데이터 자체 파괴
9일 과학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국가정보원과 함께 ‘양자암호통신 시범사업 및 보안검증제도 설명회’를 열었다. 한국과 세계 각국의 양자암호통신 경쟁 상황 및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통신 3사가 개발한 양자암호통신 기술에 대해 설명했다.양자암호통신은 양자의 물리적 특성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0 또는 1’의 값을 갖는 현재 디지털 기반 통신 방식과 다르다. 확률적으로 ‘0이면서 동시에 1’인 양자물리학적 특성을 이용한다. 불법 도·감청 및 해킹이 원천 차단된다. 해커나 도청자가 있을 경우 송·수신 중이던 데이터 자체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기존 통신 방식이 송·수신자 간 공을 주고받는 식이라면, 양자암호통신은 서로 비눗방울을 교환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양자암호통신이 급부상한 이유는 또 있다. 양자컴퓨터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현재 금융·국방 등에서 사용되는 소인수분해(RSA) 암호 방식이 무용지물이 될 위험이 생겼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는 막대한 경우의 수 연산을 매우 빨리 처리할 수 있어 RSA 암호를 쉽게 깰 수 있다.
이에 양자암호통신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과기정통부가 최근 발간한 ‘2022 양자 정보기술 백서’에 따르면 양자암호통신 세계 시장 규모는 2030년 24조5793억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작년 기준 1조6886억원에서 연평균 39.8% 성장한 수치다.
○한국, 수술 영상 전송 등 40여 개 성공
NIA는 통신 3사와 함께 지난 3년간 양자암호통신 시범사업을 했다. 병원, 공장, 연구소 등에서 40여 개의 활용 사례를 확보했다. LG유플러스는 2021년 말 충남 홍성에 있는 충남도청과 공주의 공무원교육원 사이 137㎞ 구간에 양자암호통신 회선을 구축했다. 충남도청 업무에서 생성되는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DB)를 암호화해 공무원교육원으로 전송하는 것에 성공했다.작년 1월 KT는 순천향대 서울병원부터 순천향대 부천병원까지 42㎞ 구간에 양자 통신망을 구축했다. 한쪽 병원에서 이뤄지는 수술 영상을 실시간 양자암호화해 다른 병원으로 전송한 뒤 복수의 의료진이 협진할 수 있게 했다.
또 같은 해 11월 SK브로드밴드는 광주환경공단 본부와 가스시설 사이에 양자암호 기반 가스 누출 감지 영상 솔루션을 구축했다. 14.3㎞ 구간에 걸쳐 양자암호 망을 만들었다. 현대로보틱스는 산업용 로봇 관제시스템에, 블록체인컴퍼니는 비트코인 거래 과정에 양자암호통신을 적용하고 있다.
기업이 개발한 양자암호통신 기술을 국가기간망에 적용하기 위한 노력도 시작했다. 지난 4월 국정원은 양자암호통신 보안 기준을 공개했다. 국정원은 △양자통신 암호화 장비(QENC) △양자 키 관리 장비(QKMS) △양자 키 분배 장비(QKD)에 대한 총 152개의 보안 기준을 마련했다. 각 장비는 송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양자암호 난수표(비밀키·공급키)를 생성해 관리하고 분배하는 기능 등을 한다.
이번에 마련된 보안 기준에는 생성된 암호 난수표를 저장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 이를 파기하는 권한 등이 포함됐다. 정부 차원에서 양자암호통신 장비 표준을 마련한 것은 세계 최초라는 게 국정원 측의 설명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양자암호통신 장비가 국가·공공기관에 확산하면 주요 네트워크의 안전장치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각국도 양자암호통신 기술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워싱턴DC에서 출발해 뉴욕 월스트리트 금융가와 뉴저지 데이터센터를 거쳐 보스턴까지 이어지는 총 800㎞ 네트워크에 양자암호통신을 구축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EU는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27개국이 참여하는 양자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김진원/이해성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