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중심부의 오스틴에서 79번 국도를 타고 30분을 달리면 테일러시가 나타난다. 빽빽한 옥수수밭을 넘어 멀리 수십여 기의 거대한 크레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삼성전자가 250억달러(약 33조원)가량을 투입해 짓고 있는 최첨단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현장이다. 부지 면적이 총 1200에이커로 축구장 800개 규모에 달한다. 삼성전자 경기 평택 사업장의 두 배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2021년 11월 공사를 시작했다. 내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지만 아직 공장 건물 외벽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현장 관계자는 “먼저 1~3층을 올해 완공하는 게 목표”라며 “공사는 계속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 첨단 반도체 공장은 복층 구조로 지어진다. 통상 3개 층에 1개 라인이 들어가는 식이다. 9층으로 짓는다면 3개 라인이 생산 안정화와 주문에 맞춰 순차적으로 설치된다.
삼성전자의 경계현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사장)은 지난 1월 이곳을 방문한 뒤 소셜미디어에 “내년이면 미국 땅에서 최고 선단(첨단) 제품이 출하될 것”이라고 적었다.
이곳에는 5나노미터(㎚)급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최첨단 파운드리 라인이 들어설 예정이다. 애플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의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주문하는 칩을 수탁 생산하게 된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5G(5세대)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투자로 2030년까지 대만 TSMC를 제치고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TSMC는 파운드리 시장을 개척한 곳으로 시장 점유율이 50%를 훌쩍 넘는다.
이 공장은 한국과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동맹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미국은 중국을 따돌리고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지난해 반도체법(CHIPS Act)을 통과시켰다. 미국 내에 공장을 지으면 527억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정부의 불편한 심기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공사를 시작하면서 공식적인 착공식 행사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미 상무부는 지난 2월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초과 이익 공유 △시설 접근 허용 △10년간 중국 내 반도체 설비 증설 금지(가드레일 조항) 등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프로젝트 소요 비용의 5~15%까지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을 신청하지도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가드레일 조항 등을 완화해달라는 공식 의견을 미 상무부에 제출한 상태다.
미국의 높은 인플레이션은 이곳 현장에도 들이닥쳤다. 삼성전자의 당초 예산은 170억달러였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급속히 불어나고 있다. 로이터는 지난 3월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해 건설 비용이 당초 예상보다 80억달러 이상 더 들 것이라고 전했다. 250억달러가 소요될 것이란 얘기다. 로이터는 “공사비 인상분이 전체 원가 상승분의 80% 정도”라며 “원자재 가격이 더 비싸졌다”고 전했다.
테일러(텍사스)=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