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그 점을 찍는 일을 하고 있다. 오만 가지, 죽어간 사람, 살아있는 사람, 흐르는 강, 내가 오르던 산, 돌, 풀포기, 꽃잎…. 실로 오만 가지를 생각하며 내일을 알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하며 점을 찍어간다.”(<김환기 뉴욕일기> 中)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면으로 이뤄져 있다. 면은 선이 모여 만들어지고, 선은 점이 모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점은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요소다. 그래서 김환기(1913~1974)는 세상의 모든 것을 점에 담아 점화(點畵)를 그렸다. 그렇다면 김환기가 살고 느낀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답하기 쉽지 않다. 한국 근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추상미술의 선구자, 국내 현대미술 경매 최고가 10점 중 9점을 차지할 정도로 ‘비싼 작가’….
우리가 아는 김환기는 대개 여기까지다. 그럴 만도 하다. 그의 작품세계와 삶을 총체적으로 조망할 전시는 없다시피 했고, 화집에 수록된 수많은 작품을 실제로 볼 기회조차 드물었다. 작품이 워낙 비싼 데다 흩어져 있어 대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규모 회고전 ‘한 점 하늘’은 그래서 김환기의 삶과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알 수 있는 다시 없을 기회다. 그의 시대별 대표작을 비롯해 평소 보기 어려운 초기작과 미공개작 등이 117점이나 나왔다.
한국적 전통과 추상을 접목하기 시작한 20대의 새파란 청년. 피란생활 중 허리를 펼 수 없는 다락방에서도 “그저 그릴 수밖에 없다”며 붓을 들던 30대 가장. 교수직을 내팽개치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한국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 분투하던 40대의 ‘무명 동양인 작가’. 미국 뉴욕에서 점화라는 새로운 길을 찾은 뒤 “마침내 자신을 발견했다”고 환호하던 50대의 ‘국가대표 작가’. “꿈은 무한한데 세월은 모자라다”며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 점을 찍던 61세의 김환기가 모두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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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환기재단·환기미술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