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거물급 최고경영자(CEO)들이 잇따라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거대한 소비 시장인 중국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 성장이 둔화되는 중국도 이들을 두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中 간 다이먼·머스크 “디커플링 없다”
31일(현지시간) 외신들을 종합하면 지난 30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스타벅스의 새 CEO 랙스먼 내러시먼,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CEO가 모두 중국을 찾았다.31일 다이먼 CEO는 상하이에서 열린 ‘JP모건 글로벌 차이나 서밋’에 참석해 “향후 중국과의 무역이 줄어들 수 있지만 디커플링(탈동조화)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이 중국 본토에서 투자 세미나를 개최한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3연임 이후 처음이다.
다이먼 CEO는 “JP모간은 중국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중국에 있을 것”이라며 중국 사업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나는 미국 정부를 따르는 애국자”라면서 20%에 육박하는 중국의 청년실업률을 언급하며 중국인들을 돕겠다고 밝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다이먼 CEO는 이날 천지닝 상하이 당 서기와 회동했다.
머스크는 31일까지 이틀 동안 중국의 친강 외교부 장관과 왕원타오 상무부 장관, 진좡룽 중국공업정보화부 장관 등 중국 고위 관료들과 만났다. 머스크의 방중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3년만이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머스크는 관료과의 만남에서 “테슬라는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에 반대한다”며 “중국 사업을 확장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랙스먼 내러시먼 스타벅스 CEO는 지난 3월 취임한 지 약 두 달 만에 중국을 방문해 현재 6200개 수준인 중국 내 매장을 2025년까지 9000개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날 블룸버그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이달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해 텐센트와 틱톡 등 중국 빅테크 기업 경영진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로 첨단 반도체 칩 수출길이 막히자 성능이 떨어지는 대체품을 만들어 중국에 판매하고 있다.
◆‘경제 빨간 등’ 中은 환영
미국 CEO들은 올 들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고 항공편이 정상화되면서 중국을 찾기 시작했다. 앞서 지난 3월 팀 쿡 애플 CEO, 팻 겔싱어 인텔 CEO를 비롯한 미국 기업들이 대거 중국을 방문했다.미중 갈등이라는 리스크에도 거대 소비 시장인 중국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는 분석이다. 테슬라의 경우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 비야디(BYD) 등 본토 기업들과 경쟁이 심화되고 있고, 상하이 생산기지는 전 세계 테슬라 공장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만들어낸다. 스타벅스도 전체 매출 중 북미에 이어 중국 시장에서 나오는 매출이 두 번째로 크다. 엔비디아는 전체 매출 중 중국향 매출 비중이 21%다.
다만 미 정부의 눈총이 따갑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기업들의 중국 첨단산업 투자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준비하고 있다. 반도체, AI, 양자컴퓨터 등 각종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부상이 미국의 안보와 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이날 백악관은 미 CEO들의 잇따른 방중에 대해 “중국과 미국은 경쟁 관계”라며 “(이들의) 이번 방문이 경제적 경쟁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 말 제로 코로나 방역 조치를 해제한 이후에도 리오프닝(경기 재개) 속도가 나으며 외국인 투자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중국이 31일 발표한 5월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8.8로 4월(49.2)보다 0.4포인트 하락했다.
경기 성장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규제가 더해지며 투자자들도 중국에서 발을 빼고 있다. 1분기 중국에서 외국인투자자들이 300억달러를 매도하며 1~4월 중국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3.3% 감소했다.
알프레드 우 싱가포르 국립대학 리콴유 공공정책학원 교수는 “중국 경제가 크게 악화되면 시 주석의 통치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며 “중국이 여전히 외국인투자와 외국 기업에 구애하는 이유”라고 짚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