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변호사는 “노동분야는 관련 법의 분량이 상당하고 새로운 판례도 많아 백지상태에서 기본내용을 습득하는 데 적어도 1~2년은 걸린다”며 “실전 투입이 늦어지다 보니 과거엔 1년차가 했던 업무를 이제는 2년차가 하는 사례도 많다”고 토로했다.
다른 로펌들의 사정도 대체로 비슷하다. 변호사시험에서 노동법을 선택하는 응시자가 크게 줄면서 ‘노동법을 공부하지 않은 노동팀 신입 변호사’를 보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됐다.
과열된 합격 경쟁이 만든 기현상
28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1월 12회 변호사시험을 치른 수험생 3255명 중 노동법을 선택한 사람은 138명에 그쳤다. 2017년(439명) 이후 6년 연속 감소세다. 노동법 응시자는 2012년 1회 시험 때만 해도 516명(30.9%)으로 7개 선택과목 중 가장 많았다.노동법 인기가 뚝 떨어진 사이 국제거래법은 예비 법조인들의 전폭적인 선택을 받으며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1회 시험(413명) 이후 지속적으로 응시자가 늘고 있다. 올해엔 응시자의 절반에 가까운 1559명이 이 과목을 선택했다.
치열한 경쟁에 내던져진 학생들이 합격에 유리한 과목에 집중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변호사시험에서 노동법을 선택하면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산업재해보장보험법 등 다양한 법 내용을 꿰고 있어야 한다. 새로운 판례도 많다 보니 출제 범위가 넓은 과목 중 하나로 꼽힌다. 반면 국제거래법은 가장 분량이 적은 선택과목으로 이해하는 데도 큰 부담이 없는 편이다. 과목을 잘못 골라 시험에서 떨어질 위험을 최소화하는 선택지로 꼽힌다.
이 같은 경향이 10여 년간 지속되면서 로펌들의 새내기 변호사 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로펌이 최대한 업무에 적합한 인재를 선별하려고 해도 노동팀이 노동법을 공부하지 않은 신입을 받는 일을 피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두 명 중 한 명꼴로 공부한 국제거래법은 정작 실전에선 활용되는 일이 극히 드물다. 대형로펌 3년차 변호사는 “그나마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상사에서조차 변호사가 국제거래법을 들여다보는 일이 거의 없다”며 “결국 시험용 지식에 그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법 가르칠 교수도 감소
학습방식 변화에 교육 현장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변호사시험에서 노동법이 외면받으면서 대학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노동 관련법 강의를 듣는 학생이 줄어드는 추세다. 수도권 한 로스쿨 교수는 “노동과 조세 등 분량이 많고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는 관심이 있더라도 깊게 공부하려는 학생이 많지 않다”며 “일단 합격한 뒤 배워도 늦지 않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라고 설명했다.이는 학교들의 교수 채용 방침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 대학(로스쿨 포함) 중 노동법 담당 교수를 두 명 이상 둔 곳은 서울대 고려대 이화여대 한양대 강원대 정도에 불과하다. 연세대와 경희대 국민대 명지대 등은 기존 노동법 담당 교수가 정년퇴임한 뒤 후임자를 뽑지 않고 있다. 최홍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는 “노동분야 분쟁이 늘면서 기업과 로펌 실무 담당자들은 대학원까지 가서 적극적으로 교육받고 있는데 정작 로스쿨생들은 노동법을 선택하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법학의 큰 줄기인 노동법 분야에 대한 학교와 실무 간 연계가 약해지면 법학의 뿌리가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곽용희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