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외부감사인을 주기적으로 바꾸도록 하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지정감사제)’ 폐지안이 발의돼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18년 11월 이 제도가 도입된 지 4년6개월 만이다. 기업들은 과도한 회계비용 부담을 이유로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회계업계는 회계 투명성이 저하된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신외감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공동 발의자로는 강민국·정우택·황보승희 등 13명의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현행 지정감사제는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자율적으로 6년 선임하면 그다음 3년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 후 기업과 회계법인의 유착과 부실 감사를 방지하자는 취지로 2018년 11월 도입됐고 2020년부터 본격 시행됐다.
이번에 발의된 개정안은 기존 지정감사제를 폐지하고 ‘의무 순환 감사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6년마다 감사인을 의무로 교체하되 기업이 자율적으로 감사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 의원은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국가 개입은 최소화해 외부 감사제도를 합리적으로 운용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는 그동안 지정감사제 폐지를 요구해왔다. 피감 기업의 업무를 잘 모르거나 경험이 부족한 감사인이 지정돼 감사 품질은 저하되는데 감사 보수는 큰 폭으로 올랐다는 주장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회사 한 곳당 평균 감사 보수는 2억9100만원으로, 지정감사제 도입 전인 2018년 평균 1억2500만원에 비해 두 배 넘게 증가했다. 김준만 코스닥협회 연구정책본부장은 “지정감사제 도입 후 감사 보수가 급증했고 무리한 자료 제출 요구 등으로 기업의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야당과 회계업계는 감사 독립성 강화를 위해 현행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감사 보수는 회계 투명성 제고를 위해 감사 시간이 늘다 보니 자연스럽게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의 ‘상장법인 외부 감사 보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상장사 한 곳당 평균 감사 시간은 2017년 1700시간에서 2021년 2447시간으로 늘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지정감사제가 폐지되면 대우조선해양 회계분식 사태와 같은 회계부정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며 “잘못된 회계 관행을 바로잡고자 만든 법을 시행 4년 만에 되돌리면 회계법인의 유착이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융당국도 지정감사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9년간 자유 선임한 후 3년 지정 감사를 받는 ‘9+3’과 6년간 자유 선임한 뒤 2년간 지정 감사를 받는 ‘6+2’ 방식 등의 대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지정감사제 존치, 폐지, 연수 조절 등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다”며 “업계 의견을 수렴한 뒤 다음달 중순 개선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형민 기자 mhm9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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