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심사를 진행 중인 미국 법무부(DOJ)가 “아시아나급 경쟁자가 없으면 합병 승인이 어렵다”고 대한항공에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DOJ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하면 미주 노선에서의 압도적 시장지배력 탓에 시장 경쟁을 막는 ‘독점’이 발생한다고 평가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 무산에 이어 산업은행이 추진한 항공산업 재편 ‘빅딜’도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주 노선 ‘독점’ 결론
22일 항공업계 및 투자은행 등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M&A 심사를 진행 중인 미국 DOJ는 최근 대한항공에 “아시아나급 경쟁자가 없으면 합병 승인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이에 대한항공은 “저비용항공사(LCC)인 에어프레미아를 키워서 독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제안했지만 DOJ는 ‘퇴짜’를 놓았다. 대한항공이 8월 초까지 독과점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DOJ는 합병을 불허하는 소송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1, 2위 항공사 간 빅딜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미국 DOJ의 조치는 독점 노선에 대한 즉각적인 슬롯(특정 공항에 이착륙할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대)·운수권 반납을 요구한 유럽연합(EU)의 조치보다 강력한 것이란 평가다. 필수신고국인 미국과 EU 중 한 곳에서라도 합병 불승인 판단이 내려지면 양사의 합병은 무산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운항하는 미주 노선(13개) 가운데 독점 우려가 있는 노선은 5개(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뉴욕, LA, 시애틀)다. 샌프란시스코는 유나이티드항공이, 호놀룰루는 하와이안항공이 유일한 경쟁자로 점유율이 20% 수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대한항공(델타항공 포함)과 아시아나항공이 독점하고 있다. 작년 2월 양사 합병을 조건부 승인한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국제선 26개 노선, 국내선 14개 노선에서 독점이 발생한다고 평가했다. 당시 공정위는 슬롯·운수권 반납을 명령했지만, 시정 기간(10년)을 부여해 합병 판단을 사실상 해외 경쟁당국에 미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DOJ, “에어프레미아 불충분”
경쟁당국 등에 따르면 미국 2위 항공사인 유나이티드항공은 DOJ에 지속적으로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에 부정적 의견을 냈다.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은 ‘스카이팀’ 소속으로 티케팅을 공유하는 등 높은 수준의 동맹을 맺고 있어서다. 합병으로 인해 아시아나가 유나이티드항공과 맺고 있는 ‘스타얼라이언스’에서 빠지는 점도 우려했다.대한항공은 DOJ의 경쟁 제한 해결 요구에 국내 LCC인 에어프레미아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에어프레미아가 최근 미주 노선 운항을 늘리는 등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DOJ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생 LCC인 에어프레미아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를 합친 공룡 항공사의 대항마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국 우선주의가 확산되면서 해외 경쟁당국에 의한 기간산업 M&A 불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2021년 캐나다 1위 항공사인 에어캐나다가 에어트랜젯 인수를 추진했지만 EU 경쟁당국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 DOJ의 이번 조치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합병이 최종 무산될 경우 한국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미국 DOJ로부터 합병 승인이 어렵다는 내용을 전달받은 바 없다”며 “합병 불허 소송 여부 또한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아나항공 수준의 항공사를 대안으로 제시하라는 요구 또한 받은 바 없다”고 덧붙였다.
이지훈/김형규/박종관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