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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떡볶이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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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를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설전이 벌어진 때가 있었다. 2021년 8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됐을 즈음, “불량식품인 떡볶이를 학교 앞 금지 식품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SNS에 글을 올린 게 촉발이 됐다. 유승민·원희룡 등 당시 국민의힘 대권 주자들은 잇따라 논평을 내고 “한국의 대표 서민 음식에 시비 걸지 말라”며 떡볶이를 옹호했다.

정치권이 떡볶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명박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9년 정부는 ‘한식 세계화’를 핵심 사업으로 내세웠다. 떡볶이와 비빔밥, 전통주, 김치 등 네 가지를 주력 식품으로 정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한식에 대한 반응은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특히 인지도가 낮았던 떡볶이는 수출 실적이 미미했다. 한국인에겐 떡볶이가 추억 어린 ‘소울푸드’이지만 외국인에겐 끈적한 식감, 자극적 양념의 어색한 음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미국과 네덜란드 등에서 열었던 떡볶이 축제는 일회성에 그쳤고 정부 주도로 세워진 떡볶이연구소는 1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한식 세계화 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정책이란 꼬리표가 달리며 감사원 감사까지 받았다.

그런데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떡볶이의 위상은 어떤가. 상전벽해 수준이다. 미국 NBC방송은 최근 “미국이 한국 길거리 음식인 떡볶이를 탐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 등 주요 도시의 떡볶이 전문점이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국내 식품업체 대상 청정원의 올 1분기 미국 떡볶이 밀키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97% 폭증했다.

지난 10여 년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 사이 외국인의 입맛이 달라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답은 기업화에 있다. 정부는 포기했지만, 민간은 포기하지 않았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CJ제일제당의 임원은 10년 전만 해도 비비고 만두 때문에 속을 끓였다고 했다. ‘만두’라는 발음도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제품을 들고 갔다가 퇴짜 맞기 일쑤였다. 현재 단일 품목으로 글로벌 연매출 1조원을 차지하는 효자상품이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직원들은 발이 닳도록 현지를 뛰어다녀야 했다.

CJ ENM이 2012년부터 해외에서 여는 K팝 콘서트, ‘케이콘’도 한식을 퍼뜨리는 매개체가 됐다. 미국 일본 태국 등에서 열린 케이콘에선 현지 젊은이들에게 떡볶이와 라면을 맛보게 했다. 오랜 기간 한식 세계화를 위해 노력해온 기업은 CJ뿐만이 아니다. 대상은 지난해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 6720차례 김치 광고를 냈다. 풀무원은 한국 식재료를 알리려 글로벌 식품 콘퍼런스를 후원하고 미국에서 요리 경연대회를 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식 세계화의 목표는 연간 수출 100억달러 돌파였다. 그 목표는 12년 만인 2021년 달성됐다.

음식에 대한 취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른 나라 음식을 받아들이려면 그 나라에 대한 문화를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먹고 마시는 음식은 그 자체로 제2의 자아다.” 1800년대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의 말은 아직도 식품·외식업계에서 ‘복음말씀’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만큼 음식은 정체성을 갖고 있어 다른 문화권에 퍼뜨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식 세계화를 위한 정부 정책은 단기 성과에 급급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초 ‘K푸드 수출 확대 추진본부’를 출범시켰다. 농식품 수출 목표를 올해 130억달러, 2027년에는 230억달러로 내걸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실패의 책임을 물어 K푸드 수출 정책은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정치 싸움을 벌이는 구태를 반복할 건가.

일본 정부는 1960년대부터 60년 넘게 일식 세계화를 추진해왔다. 일본의 식문화와 식재료, 요리법, 요리장인을 전파했다. 태국도 2000년 초반부터 ‘타이 키친 오브 더 월드’라는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각국에 ‘음식 외교’를 벌였다.

세계 식품시장 규모는 무려 8조달러(약 1경686조원)에 달한다. 이 어마어마한 시장에서 K푸드는 이제 막 0.1%를 달성했다. 당장 올해 수출 목표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백년대계를 동시에 세워 씨앗을 뿌려야 한다.

프랑스 르꼬르동블루와 같은 세계적 한식 인재 양성소를 세우는 것, 해외 한식 식재료 물류망을 구축해 균등한 품질을 유지하는 일, 라면 등 잘나가는 K푸드에 유해물질 점검 기준을 높이며 견제하는 아시아권 국가에 대한 외교라인을 가동하는 것 등 정부의 역할은 이런 곳에서 빛이 난다.

한식 세계화는 당장 외국인 입맛에 맞게 떡볶이의 맛을 바꾼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한국의 식문화를 받아들이도록 세계인의 마음을 열어야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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