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5월 12일 11:2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적 해운사인 HMM이 현대LNG해운 인수전 참여를 시사하면서 인수합병(M&A)을 둘러싼 눈치 게임이 본격화됐다. 인수에 관심없다는 입장을 반복해온 HMM이 인수전에 뛰어든 데는 결국 해외매각에 대한 여론에 부담을 느낀 정부의 입김이 반영됐다는 시각이 짙다.
매각 측 입장에선 유력 후보인 HMM을 끌어들인 성과를 냈지만 거래 종결까진 넘어야할 산이 많다. 관건은 가격이다. HMM의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 입장에선 지난해 말 논의한 가격 수준인 4600억원보다 높은 가격에서 인수할 경우 "여론에 휘말려 높은 가격을 지불했다"는 논란에 설 수 있다는 관전평이 나온다.
정부·여론 우려에…결국 떠밀려 나온 HMM?
1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HMM은 현대LNG해운 본입찰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매각 측에 전달했다. 매각 측은 이달 말로 예정됐던 본입찰 일정을 다음달 초로 연기하기로 했다. 현대LNG해운의 대주주는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IMM프라이빗에쿼티(PE)와 IMM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다. 이들은 지난 3월 예비입찰을 시작으로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최근 진행된 본입찰엔 국내 기업은 불참하고 외국계 선사들만 참여했다.인수전 초반부터 "관심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하던 HMM의 태도 변화엔 정부 차원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해외 매각 추진 소식이 알려진 후 해양수산부는 "정부는 전략화물인 LNG의 수송 안정성과 국적선사의 영업력 유출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매각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운업계와 선원노조도 잇따라 해외매각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자 정부차원에서도 손을 놓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시각이다. 현재 HMM의 대주주는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 등 국책기관이다.
결국 양 측간 눈치싸움 끝에 매각 측은 HMM을 링으로 끌어들인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략화물인 LNG운송의 핵심 매물에 해외 선사들만 참여했다는 점을 대외에 흘려 정부당국과 선사노조, 여론의 우려를 증폭시켰고 결국 산업은행 측을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4600억도 비싸다던 산은…고가매수시 후폭풍 우려
현대LNG해운의 해외매각이 강행됐다면 IMM 측도 부담을 질 수밖에 없었다. 여론 악화와 거래종결 불확실성에 따른 위험을 고스란히 지기 때문이다. 2014년 현대LNG해운에 약 5000억원을 투자해 경영권을 확보한 IMM 측은 투자자에 대한 선관주의 의무에 따라 펀드 수익률을 극대화해야하는 차원에서 해외 매각 등 여러 방안을 열어뒀다. 현행법상 해외 매각을 막을 수 있는 수단도 없다. 하지만 대다수 출자자(LP)가 국내 연기금·공제회로 이뤄진 IMM 측에선 HMM 등 국내기업으로의 매각이 가장 '깔끔한' 투자 회수 방안이었다. 현재 IMM PE는 국민연금의 PEF 출자 후보에도 올라 있는 상황이다. 양 측의 주도권 싸움의 2라운드는 결국 가격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HMM과 IMM 측 간 단독협상에선 현대LNG해운의 매각가가 4600억원 수준까지 논의됐다. 회사의 잔존가치로 약 2000억원을 책정했고, HMM이 인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회비용 등 미래가치가 2600억원으로 평가됐다. HMM의 전신인 현대상선은 IMM에 LNG사업부를 넘기면서 2029년까지 LNG운송업에 재진출하지 않겠다는 '경업금지'를 맺었다. HMM이 현대LNG해운을 재매입하면 경업금지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이 미래가치로 반영됐다.
다만 당시만해도 산업은행 측이 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거부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이번 협상에서 이를 웃도는 매각가가 형성된다면 "정부 측과 여론 압력으로 막대한 웃돈이 지급됐다"는 논란에 설 수 있다. SK해운의 탱커선사업부, 폴라리스해운 등 잇따라 매물로 출회한 사모펀드 보유 해운사들에게 "해외매각으로 여론을 형성하면 HMM이 회사를 비싼값에 사준다"는 부정적 선례를 남길 수도 있다.
산업은행과 해진공 등 HMM의 대주주와 정부 측은 이번에도 적정 가격에 인수를 자신하고 있다. 해외매각에 대한 직·간접적인 '거부권'등을 무기로 인수전에 유리한 구도를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한 인수 측 고위관계자는 "실사 단계에서 면밀히 살펴보겠지만 몸값으로 거론되는 4000억원도 비싸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현재 현대LNG해운의 보유 선박 16척 중 10척 가량은 한국가스공사와 장기운송 계약을 맺어 영향 아래 있다. 선사들은 일반적으로 장기계약을 맺으면서 별도 약정을 통해 해운사 대주주가 변경하면 이에 대해 화주의 동의를 받아야하는 절차를 밟는다. HMM의 입찰 합류 이전까진 정부가 공공기관인 가스공사를 통해 해외매각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현대LNG해운이 보유한 선박 대다수에 선박금융을 제공한 해진공 등이 대주주 변경시 선박금융 금리를 재조정하는 방식으로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이번 매각에 사활을 걸고 있는 IMM 측도 쉽게 물러날 처지가 아니다. IMM PE는 에어퍼스트 소수 지분, 미샤 운영사인 에이블씨엔씨 등 활발한 매각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샘 투자 실패 등으로 출자자(LP)들의 의구심이 커진 상황에서 투자금 회수에 속도를 내 성과를 증명해야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