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과반수의 동의 없이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불이익 변경)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취업규칙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근로자 과반수 동의 없이도 ‘불이익 변경’할 수 있다는 과거 입장을 뒤집었다. 기업들의 근로조건 변경 절차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1일 현대차 간부사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상고심에서 사건 일부를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현대차는 1968년부터 전체 직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이 있었지만, 2004년 7월 주5일제가 도입되면서부터는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을 따로 만들어 시행했다. 간부사원 취업규칙에는 월 개근자에 지급되는 1일 휴가를 폐지하고, 연차 휴가일수에 상한선 25일을 규정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일부 간부사원들은 취업규칙이 노조 동의 없이 변경돼 무효라면서 미지급된 연·월차 휴가수당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간 대법원은 취업규칙을 ‘불이익 변경’하려면 ①근로자 과반수나 과반수 노조의 동의 혹은 ②과반수 동의 없이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 허용된다는 입장이었다.
현대차도 소송 과정에서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바꾸면서 간부사원 89%의 동의를 받았으며, 사회통념상 합리성도 있으므로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1심에선 원고들이 패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연·월차휴가 관련 부분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인데도 △근로자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도 인정되지 않으므로 무효”라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결론에선 2심과 마찬가지로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 다수의견(7인)은 원심이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적용한 것은 잘못됐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측은 “집단적 동의권이 침해됐다면, ‘사회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규칙 변경을 정당화될 수 없고 원칙적으로 무효라고 선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6명의 소수 대법관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대법원이 오랜 기간 그 타당성을 인정하여 적용한 것으로 현재에도 여전히 타당하므로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별개 의견에 그쳤다.
대법원은 “근로자 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했다면 동의 없는 불이익 변경도 유효하다고 인정될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번 판례 변경으로 사실상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 없이는 도입될 길이 막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때 노조의 반대를 피하는 방안으로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지침화 하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 최근에도 하급심은 집단적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임금피크제 등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에 있으므로 유효하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한편 경영자총협회는 “노동시장 경직성을 다소나마 완화하던 판례 법리를 부인하는 판결에 유감을 표한다”며 “집단적 동의 없이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토록 법제도를 신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등 외국에 비해 경직된 근로조건 변경제도 를 가진 한국에서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제도의 필요성이 더 크다는 설명이다.
김진성/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