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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던 해운산업 살려낸 '위기극복 DNA' 지금 필요하다 [유창근의 육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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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운에 관한 소식이 심심찮게 입길에 오르내린다. HMM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는 소식은 금세 운임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전 수준으로 떨어져 미래가 암울하다는 뉴스에 빛이 바랬다. 미증유의 해운 호황을 누리게 했던 코로나19는 종식 단계에 접어들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와 식량 가격 급등, 세계적 인플레이션, 금리 급등, 수요 감소로 이어지면서 하늘 모르고 치솟던 운임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귀한 것뿐인데 마치 HMM에 큰일이 날 듯한 분위기다.

정부가 HMM의 새 주인을 찾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매각 주간사 선정 작업을 끝냈으며 인수 후보로 몇몇 대기업의 실명도 거론되는 실정이다. 작년 매출 18조6000억원, 영업이익만 10조원에 달하고 15조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치만 보면 HMM은 매력적인 회사다. 그러나 영구채 문제 외에도 HMM 자체의 미래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인수자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현대상선은 HMM이라는 이름으로 재기했지만 이를 가능하게 했던 초대형선 개념과 기술은 우리가 주도한 게 아니라 남을 따라간 것에 불과하다. 70년이 채 안 되는 컨테이너 산업의 역사에서 지난 10년이 ‘초대형화’의 시대였다면, 향후 10년은 탄소중립을 기반으로 환경규제와 선사 간 협력에 대한 견제가 본격화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초대형선 건조를 기획·주도했고 2020년부터 본격 시작한 환경규제에 대응했던 사람으로서 한국 해운이 겪었던 격동기 경험했던 과거를 복기하고 앞으로 승리하는 길을 모색해보려 한다. 지면을 통해 좀 더 나은 해운 한국의 미래를 고심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운 산업은 여타 국내 기반 서비스업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우선 가격이 세계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 글로벌 시장 메커니즘에 의한 것이므로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다른 산업에 비해 매우 심하다.

예를 들어 초대형 유조선(VLCC·Very Large Crude Carrier)의 경우 불황기에 일당 1만~2만달러 하던 운임이 2000년대 중반 중국 특수 영향으로 무려 일당 15만달러 이상으로 폭등했었다. 이처럼 큰 변동성을 이해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봐야 해운업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해운업 전문가들은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다 담지 말라”고 조언한다. 10년 전쯤 ‘어떤 바구니에 달걀을 담겠느냐’는 질문에 컨테이너와 유조선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만큼 현대상선이 이 두 부문에 많은 역량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2001년 9.11 사태 여파로 인한 현대상선 위기를 극복할 때는 유조선 부문이 톡톡히 역할을 했다. 반대로 세계적 해운사 머스크(Maersk)는 2000년대 중반 중국 특수가 시작되기 직전에 탱커선 전 선대를 현대상선을 비롯한 타 선사에 처분해 두고두고 후회한 적이 있다. 2017~2020년 현대상선과 머스크가 협력하던 시절, 종종 현대상선 유조선 부문에 대해 물어볼 정도로 머스크에게는 아쉬운 결정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머스크는 유조선 매각으로 컨테이너 초대형화에 올인해 성공, 이번에는 유조선 대신 물류에 투자해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다변화 이슈는 현재 HMM이 풍부해진 유동성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내가 조언하고 싶은 것은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아직 선가에도 거품이 끼어 있고 지금 시작한 해운 불황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기다릴 필요가 있다.

현금 보유가 충분한 상태에서 이자율 이상의 수익을 내는 신규 투자처를 찾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제대로 역량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히 새로운 분야에 무분별하게 투자하는 것은 벌어놓은 돈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지름길이나 다름없다. 우리도 2000년대 중반 중국 특수, 2010년 반짝 호황 때 이미 경험하지 않았는가?

필수 불가결한 투자나 역량이 갖춰진 분야의 투자라면 자기 자금으로 하는 것이 좋다.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금융을 굳이 지금 쓸 이유가 없다. 자기 자금으로 하지 않는 투자라면 참아야 할 때다. 이 순간이 지나가면 모든 가치와 이자율은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그때 신조(새로 선박을 만드는 것)를 하든지 인수를 하든지 결정하면 된다. 그전에는 투자를 목표로 하는 분야에 시간을 두고 착실하게 필요 역량을 쌓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의 역량은 크게 인적 자원과 기술, 그리고 정신적 유산을 꼽을 수 있다. 인적 자원이나 기술은 돈으로 얻을 수 있으나 정신적 유산은 그렇지 않다. 기업문화 속에 전수되는 정신적 유산은 소중히 지켜야 할 가치라 생각한다.

실제로 초대형선 건조 과정에선 해운 및 조선 분야에서 축적된 역량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집단지성의 소중한 승리 경험이 당면할 미래를 위한 의사결정에서도 귀하게 쓰이길 바란다.

※ [대한민국 해운강국의 길 - 유창근 전 HMM 대표 육필 회고]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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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근 전 대표는…
HMM 초대형선 발주로 '한국해운 기사회생' 해결사 역할
유창근 전 대표는 해운물류 경력 40년, 해외주재 18년 경력의 해운경영자로 HMM(옛 현대상선) 사장을 두 차례 역임했다. 1975년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종합상사와 현대건설 수송 부문에서 일하면서 해운과 인연이 시작됐고 1986년 미국 현지에서 현대상선으로 옮겼다. 이후 현대상선 유럽본부장과 컨테이너사업부문장을 거쳤고, 선박 수리와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계열사 해영선박 대표로도 2년간 재직한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경제 불확실성이 지속되던 2012년 처음 사장으로 발탁됐다. 이후 2014년 인천항만공사 사장에 취임, 2년간 항만경영자로도 활약하던 도중 2016년 세계 해운 경기가 최악일 때 HMM을 회생시킬 수장의 임무를 다시 맡았다.

유 전 대표의 두 번째 현대상선 사장 취임 직전인 2016년 8월 말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한국해운은 최악 위기를 맞았다. 유 전 대표는 당시 상황을 수습하고 한국 해운산업의 반전을 이끌어낸 초대형선 20척 건조를 주도했다.

2016년부터 현대상선 대주주가 된 KDB산업은행 지원에 힘입어 초대형 유조선 5척, 초대형선 건조를 준비한 끝에 2018년 2만4000TEU(6m 길이 컨테이너 1개 단위)급 컨테이너선 12척과 1만3000TEU급 8척을 발주, 2020년 4월부터 주요 노선에 투입했다. 결과적으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겹치면서 2022년 한 해 동안 총 10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창출하는데 초석을 놓는 등 한국 해운산업 초유의 경영성과를 거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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