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헬스케어 서비스가 의료에 접목되면서 소비자 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 맞춰 기업은 물론 의료기관, 정책도 바뀌어야 합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사진)는 최근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권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디지털헬스케어 기술의 급여 비급여 대상 여부를 결정하는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원격의료, 디지털치료제,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의 건강보험 적용 방안을 마련하는 ‘디지털헬스케어 건강보험 적용 중장기 방안’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그는 “원격의료, 의료데이터 등의 규제는 산적했지만 가치 중심의 연구가 부족하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의료 분야 디지털 전환 중요성을 체감하는지.“코로나19 유행 기간 서울대병원 중동지사장을 지낸 뒤 한국에 왔는데 해외에선 디지털 전환, 데이터가 상당히 중요한 화두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2019년 독일에서 도입한 디지털 헬스 앱(DIGA) 급여 방식이었다. 대륙법 체계인 독일은 제도적으로 근거가 없는 기술엔 건강보험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구조다. 이런 독일도 바뀌기 시작했다.”
▷독일의 변화에 대해 설명해달라.“DIGA는 독일 정부가 디지털헬스케어 서비스를 3개월 안에 검토해 보험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독일은 건강보험의 에비던스(근거) 수준이 상당히 높은 나라다. ‘주변 유럽 국가보다 다소 늦게 최신 기술을 보험시장에 진입시켜도 문제 없다’고 했던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선등재후평가 제도’(일단 건강보험시장에 진입한 뒤 가치를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 자체가 도전적으로 보였다. 여러 국가 사례 등을 살펴본 뒤 국가 간 ‘특허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바이오헬스 분야에 다양한 신기술이 등장하면서 각국 정부가 시장을 만들어 기술이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국가 간 경쟁이 ‘세계에서 가장 완고하던’ 독일의 보험 정책마저 ‘가장 빠르게’ 바꾼 것이다.”
▷국내 디지털헬스케어 기업의 최종 고민은 ‘수익성’이다. 많은 기업이 건강보험 시장 진입을 목표로 삼고 있다.“디지털헬스케어 신산업이 성장하려면 누군가로부터 돈을 받고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국내 디지털헬스케어 시장에 진입하길 원하는 기업은 자연히 페이어(비용 지급자)가 누구인지 관심을 두게 된다. 결국 건강보험에 서비스를 구매해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하지만 건강보험 제도는 이미 잘 짜인 수가(진료비) 구조가 있다. 오랜 기간 사회적 합의에 따라 형성된 구조기 때문에 여기에 맞추지 않으면 건강보험에서 비용을 지급하긴 어렵다. 예를 들어 보자. 특정 기업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뇌출혈 부위를 파악하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하지만 해당 솔루션으로 찾을 수 있는 출혈 부위가 뇌 중에서도 일부 부위에만 머무르면 해당 솔루션은 건강보험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의사가 직접 찾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려워서다. 뇌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 출혈을 걸러낼 정도는 돼야 한다.”
▷일부 의료 AI 기업은 병원에서 답을 찾고 있다.“모든 환자를 대상으로 비용 대비 효과를 명확히 입증하기 힘든 솔루션은 병원에 판매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디지털 치료제도 마찬가지다. 의약품이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으로 나뉘는 것처럼 효과와 위험도 등에 따라 건강보험 혜택을 주는 제품과 소비자 대상 판매 제품이 분리돼야 한다. 단순한 원격진료 플랫폼에 건강보험이 비용을 지급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이들 서비스가 사회적 비용을 줄이면서 환자 건강 수준을 높였다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의료 데이터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유럽 미국 등은 오랜 기간 굳어진 프라이버시의 문화적 기반 위에서 의료정보 활용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데이터 활용이 늘면 소비자는 감시를 강화하게 되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개인 정보 문제도 수면 위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문제가 터지면 이후엔 데이터 활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 현 의료정보 보호시스템을 국민에게 명확히 설명하고 활용 시스템을 잘 구축해야 한다.”
▷디지털이 제약·의료기기에 접목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신약 개발 분야에서 AI 역할은 입증됐다. 누가 빨리 특정한 물질을 선점하는지에 따라 좋은 신약을 제조할 수 있는지가 결정되는 시대가 됐다. AI가 여기에서 역할을 할 것이다. 의료기기는 기기 자체에 데이터를 읽고 해석하는 기능이 포함될 수 있다. 의사에게 환자 상태를 알리는 등 판단 기능을 갖춘 기기가 늘어날 것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