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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컬렉터들이 ‘페 사장’이라고 부르는 인물이 둘 있습니다. 프랑스 기반의 갤러리 페로탕을 운영하는 엠마뉴엘 페로탕, 독일 기반의 갤러리 페레스프로젝트를 운영하는 하비에르 페레스가 그 주인공입니다. 둘 다 성의 첫 글자가 ‘페’로 시작하기에, ‘김 사장, 박 사장’하듯이 농담 삼아 애칭처럼 페 사장이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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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갤러리스트라는 점 외에도 두 사람의 공통점은 또 있습니다. 한국 진출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겁니다. 페로탕은 지난해 강남에 ‘페로탕 도산 파크’를 개관했습니다. 1호점인 삼청점에 이어 두 번째 지점입니다. 한국의 유력 갤러리 중에서도 2호점을 보유한 곳은 드물다는 점, 건물 임대료 등을 생각해 보면 파격적인 투자를 단행한 겁니다.
이에 질세라 다른 페 사장, 페레스 대표도 최근 삼청동에 2호점을 개관했습니다. 작년 4월 서울 신라호텔 지하에 1호점을 연 지 딱 1년 만인데요. 그만큼 한국에서 장사가 잘된다는 뜻이겠지요. 페레스 대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유력 갤러리들이 포진한 이 동네에 갤러리를 여는 게 꿈이었다”고 했습니다.
공간은 전체 4층 공간에 2개 층은 전시장으로, 나머지 2개 층은 사무실 용도입니다. 전시 공간만 440㎡(약 134평)에 달합니다. 원래 갤러리 운영을 염두에 두고 지은 건물이라 전시에도 적합하다는 설명입니다.
지금 이곳에서는 개관전으로 두 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1996년생 영국 작가 씨씨 필립스의 ‘워킹 더 인-비트윈’. 작가는 미대를 나오지 않았고, 2020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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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를 연상시키는 화풍이 인상적입니다. 페레스 대표는 “필립스는 인종·성적 소수자로서 자신이 바라보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며 “그의 작품에는 수많은 미학적 의미가 담겨있어 오랜 시간 계속해서 공부하듯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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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서 열리는 그룹전 ‘더 뉴, 뉴’에는 라파 실바레스, 오스틴 리, 조지 루이, 파올로 살바도르, 에밀리 루드비히 샤퍼, 안톤 무나르 등의 구상회화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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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면서 국내 미술품 컬렉터들의 저변이 최근 폭발적으로 확대됐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글로벌 갤러리들이 앞다퉈 한국에 지점을 열고 신진 작가의 소품부터 거장이 그린 대작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작품들을 소개한다는 건, 그만큼 잘 팔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한편으로는 ‘중소규모 국내 화랑들이 더 어려워지겠구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유명 글로벌 프랜차이즈의 지점이 우후죽순 생기면 동네 식당에는 손님이 줄어드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요. 중소규모 화랑들이 이 위기를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바꿀지, 파고를 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는 자신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