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 전만 해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찬사까지 받으며 업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메타버스가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디즈니, 메타 등 메타버스를 차세대 먹거리로 선정한 글로벌 빅테크들은 경기 침체가 오자 앞다퉈 관련 부서의 축소 및 통폐합에 나섰다. 메타버스 사업이 장기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드는 대신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탓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신기루와 같았던 메타버스의 거품이 꺼진 것이라는 거품론과 함께 인공지능(AI) 분야와 맞물려 장기적인 성장이 불가피하다는 긍정론으로 의견이 나뉘고 있다.
메타버스 떠나는 美 빅테크…"시작도 안 했는데 끝났다"
작년 10월 메타버스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산업 메타버스 코어(Industrial Metaverse Core) 팀을 꾸린 마이크로소프트는 불과 4개월 만에 100명에 달하는 팀원 전원을 해고했다.메타버스를 '차세대 스토리텔링의 개척지'라고 표현한 디즈니 역시 메타버스 사업에 뛰어든 지 불과 1년 만인 작년 2월 관련 개발 부서를 해체하고 50명을 감원했다.
메타버스에 주력하기 위해 사명까지 변경한 메타 조차 지난 3월 메타버스 사업의 중추였던 가상현실(VR) 및 증강 현실(AR) 등의 기술 직원 등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대표적인 메타버스 관련 토큰인 디센트럴랜드(MANA), 엑시인피니트(AXS), 더샌드박스(SAND), 에이프코인(APE) 등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메타버스 팀 전원 해고 소식이 알려진 당일 일제히 15% 이상 급락했다. 메타버스 플랫폼 기업 로블록스는 지난 17일 이용자 수와 일평균 접속 시간 등이 줄어들었다는 집계가 나오면서 주가가 12% 가량 급락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제미마 켈리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는 "메타버스가 무엇인지를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며 "그동안 제시된 메타버스 관련 아이디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메타버스는 제대로 시작한 적도 없지만 이미 끝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창시자 역시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다"라며 메타버스 사업에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장기적으로 봐야…MR 헤드셋, 메타버스 기폭제 될 것"
다만 빅테크 업계의 메타버스 사업 정리가 경제 상황 악화로 인한 일시적인 구조조정의 일부일 뿐 완전한 후퇴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메타버스 산업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매튜 볼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메타버스를 향한 과도한 기대감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변화는 그렇게 빠르게 찾아오지 않는다. (메타버스 산업의) 발전이 멈춘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메타의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는 "메타는 여전히 메타버스를 자신들의 핵심 사업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당장의 수익화가 어려운 메타버스 사업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다고 해서 메타가 관련 사업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회사 실적이 나아지고 경제 상황이 좋아진다면 다시 메타버스 사업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최근 메타버스 업계는 애플이 개발 중인 확장현실(XR) 기기 '혼합현실(MR) 헤드셋'에 주목하고 있다. 이 기기의 출시가 메타버스 산업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애플의 MR 헤드셋은 오는 6월 개발자 회의를 통해 공개 후 이르면 올 연말 판매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 월가는 저가형 가상현실(VR) 기기의 상용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2025년 이후가 메타버스 산업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안희창 위에이알(WE-AR) 비즈니스팀 리드는 "메타버스 생태계는 기기 보급의 부족으로 인해 진입장벽이 아주 높다"라면서도 "어떤 브랜드보다도 강력한 충성 고객층을 보유한 애플이 기기를 생산한다면 다양한 디바이스 및 콘텐츠 기업의 시장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애플의 MR 헤드셋 출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2025년은 애플, 메타, 구글, 삼성 등 IT 산업을 선도하는 브랜드들이 앞다퉈 관련 기술 제품들을 선보이겠다고 한 시기"라며 "메타버스 대중화를 위해 구축돼야 할 최소한의 인프라가 구축되면 메타버스 산업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매우 의미있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공지능 대세로 떠올라…메타버스도 수혜 입을 것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빅테크 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메타버스가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인공지능과 메타버스는 뗄 수 없는 관계로 함께 발전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한동안 조용하던 메타버스 상장지수펀드(ETF)의 수익률이 최근 상승세로 돌아선 것도 이같은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올해 1분기 NH-Amundi 자산운용의 'HANARO미국메타버스iSelect ETF'와 'KODEX미국메타버스나스닥액티브 ETF'의 수익률은 각각 34.54%, 21.74%로 급상승했다.
한종목 미래에셋 연구원은 "빅테크들의 메타버스 사업 축소 및 AI 산업 대두로 인해 메타버스가 사양길을 걸을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지만 그렇지 않다"라면서 "AI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 메타버스 기술도 고도화되는 등 큰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해 1분기 메타버스 ETF가 좋은 수익률을 거둔 것 또한 이러한 기대감을 나타내는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안희창 위에이알 리드 또한 "AI의 등장이 메타버스 대중화를 앞당겨 주리라 생각한다"라며 "AR 기술 확산의 방해 요인 중 하나는 기술적인 진입장벽이었다. 간단한 코딩, 2D·3D 아트까지 생성해주는 AI 기술은 메타버스 콘텐츠를 보완하면서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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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현 블루밍비트 기자 cow5361@bloomingbit.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