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4월 13일 영국에서 출간된 소설 <카지노 로얄>은 한 달도 안 돼 양장 초판본 4728부가 다 팔렸다. 두 번째 판도 매진. 8000부 넘게 찍은 세 번째 판도 금세 동났다. ‘007 제임스 본드 열풍’의 시작이었다.
당시 영국은 전쟁의 상흔이 여전했다. 폭격당한 건물은 제대로 복구되지 못했고, 수년간 지속된 긴축 여파로 경제 활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영국의 파워가 예전만 못할 때 등장한 본드는 영국인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어루만져줬다.
이안 플레밍(사진)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 첫 소설인 <카지노 로얄>을 1952년 결혼을 준비하던 중 자메이카에 있던 별장인 ‘골든아이’에서 썼다. 1908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영국 해군 정보부에서 일했다. 그 경험이 그가 쓴 14편의 시리즈에 녹아들어 있다. 플레밍은 1964년 56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제임스 본드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얼마 전 <카지노 로얄> 출간 7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새로운 에디션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출간됐는데 여성과 동성애 혐오, 인종차별적 내용이 삭제돼 논란을 빚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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