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벗어나 훌쩍 떠나는 여행. 언제나 처음처럼 떨리는 단어다. 하지만 이 즐거움을 누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탄소 배출이라는 불편한 짐을 지게 된다. 어떻게 하면 여행자와 여행지가 모두 행복할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에너지를 덜 사용하고, 쓰레기를 줄이고, 로컬 문화를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지속가능한 여행을 만들어 갈 수 있다. 탄소 발자국 줄이기부터 시작해 보자. 멀리 가지 않아도, 거창한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보물 같은 국내 여행 콘텐츠가 차고 넘친다.
밀양 120년 고택에서 하룻밤
기존 건축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그린 리모델링이 대세다. 밀양은 고택 종갓집을 활용한 전통체험 사업이 활성화된 지역이다. 숙박이 이뤄지는 교동 향교마을 손대식 고가는 문화재청과 밀양시가 후원하는 고택 종갓집 활용 사업지다. 전통 한옥 양식을 개축 없이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최소한의 리모델링으로 현대식 시설을 갖췄다. 얇은 창호지 너머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잠을 청하면 약간의 불편함도 낭만이 된다.
클래식 들으며 숙성된 막걸리
ESG여행은 곧 ‘공정여행’이다. 로컬 특산물을 활용한 베이커리, 지역 이름이 들어간 술·음료 등을 우선 소비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밀양클래식술도가’는 밀양의 햅쌀 등을 이용해 다양한 전통주를 생산한다. 이곳만의 독특한 숙성 비법은 클래식 음악이다. 양조장을 가득 채운 웅장한 클래식에 맞춰 거품을 ‘퐁퐁’ 뿜으며 발효되는 전통주 향만으로도 술기운이 얼큰하게 오르는 듯하다.
양조장에 딸린 카페 표충로에서는 비빔밥·두부김치·파전 등 정갈한 우리 음식과 다양한 막걸리를 페어링해 즐길 수 있다. 배현준 공장장은 “밀양탁주, 클래식 청주 등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며 “최근엔 스타워즈의 캐릭터 스톰트루퍼와의 협업을 통해 2030세대를 타깃으로 한 ‘스톰탁주’를 출시했다”고 말했다. 뚜껑·라벨을 장식한 스톰트루퍼 캐릭터와 깔끔한 뒷맛 덕에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젊은 층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누구나 가볍게 마실 수 있는 6도부터 술을 즐기는 애주가를 위한 17도까지 다양한 라인으로 출시됐다.
전북 부안 새만금환경생태단지
간척사업을 위해 방조제 시공에 들인 시간만 무려 18년. 새만금을 원래의 주인인 자연에 돌려주기 위해 인간은 또 한 번 거대한 계획을 세웠다. 축구장 면적의 약 110배에 달하는 78만5892㎡ 부지에는 148과 396종의 생물이 자유롭게 서식한다. 생물서식습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습지관찰대·탐조대 역시 인간의 모습을 철저히 드러내지 않도록 설계됐다.
산책로에서 시멘트가 굳기 전 이곳을 다녀간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고라니·삵 등 야생동물의 발자국이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울퉁불퉁한 길이 거슬릴 법도 하지만, 이 자취조차 자연의 섭리이기에 억지로 보수하지 않았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평창 촌사람의 자연주의 라이프
지역 소멸 위기를 관광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세 청년이 만났다. 와우미탄(WOW:미탄)은 최영석 어름치마을 단장을 중심으로 이재용 옐로우트리카페 대표, 김은솔 평창연화농원 농부가 꾸려가는 청년협동조합이다. 양질의 일자리·소득증대 창출 등 지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창과 다른 지역을 잇는 구름다리가 되길 기꺼이 자처했다. 지역과 환경이 함께하는 여행을 ‘와우미탄 ESG여행’으로 이름 짓고 와우미탄 로드 개발, 삼봉X우리 챌린지, 소상공인과의 만남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환경부는 평창군 생태관광지를 체험해 볼 수 있는 ‘2023년 봄철 생태관광 체험단’을 5월 19~20일 양일간 진행한다.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평창군 어름치마을 및 동강 탐방’ 코스는 지역 농산물로 마련한 식사가 제공되고, 자연환경해설사의 전문해설을 들으며 백룡동굴·동강 등 유명 생태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다.친환경 전기버스 달리는 녹색도시
녹색 여행을 위해 기차·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을 추천한다. 밀양시는 저탄소 녹색도시 실현을 위해 친환경 전기버스를 운영 중이다. 2023년 1월 기준 11대인 친환경 전기버스를 올해 안에 총 18대까지 늘리고, 2028년까지 현재 운행 중인 버스 37대를 모두 친환경 전기버스로 교체할 예정이다. 밀양은 자전거길이 잘 조성돼 있어 라이더의 성지로 불리기도 한다. 강변 자전거도로를 따라 라이딩하며 밀양 비경을 눈에 담아보자.새만금환경생태단지는 출발지에서 새만금환경생태단지까지 오고 가는 친환경 전기버스를 운영한다. 5명 이상 단체 예약하면 무료로 무공해 전기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환경생태단지 내부에서는 자전거·휠체어 등 다양한 친환경 이동수단을 빌릴 수 있다. 차량 이용이 어려운 뚜벅이 여행자를 위해 평창군은 ‘평창관광택시 투어’를 지원한다. 테마별 코스에 따라 꼭 필요한 곳만 편리하게 택시를 이용함으로써 탄소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밀양= 박소윤 한국경제매거진 여행팀 기자 sos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