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판도를 바꿀 초거대 인공지능(AI)의 속도는 슈퍼컴퓨터가 좌우합니다.”
김재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사진)은 19일 “슈퍼컴은 기술 패권 시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인프라”라며 이렇게 말했다. KISTI는 고성능 슈퍼컴퓨터와 함께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를 운영하고 있는 공공기관이다.
챗GPT와 같은 초거대 AI 언어모델 성능은 파라미터가 많을수록 올라간다. 파라미터는 인간 뇌로 치면 신경세포 다발에 해당한다. GPT-3는 1750억 개 파라미터를 갖고 있다. 최근 발표된 GPT-4의 파라미터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조 단위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막대한 파라미터가 작동하려면 슈퍼컴이 필수다.
챗GPT에 대항할 국내 AI 언어모델로 네이버 하이퍼클로바, 카카오브레인 KoGPT, LG그룹 엑사원 등이 있다. KISTI에 따르면 이들 모델은 여러 가지 한계로 챗GPT 등 글로벌 수준엔 못 미친다. 대표적인 한계 중 하나가 슈퍼컴퓨터의 성능이다.
매년 반기별로 발표되는 슈퍼컴 순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세계 1위 슈퍼컴은 미국의 ‘프런티어’다. 873만112개 코어와 1102페타플롭스(1PF: 초당 1000조 번 연산) 성능을 갖췄다. 한국 기상청의 쌍둥이 슈퍼컴 구루·마루(18페타플롭스), KISTI의 누리온(13.93페타플롭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격차가 크다.
김 원장은 “2019년 11월 14위였던 누리온 세계 랭킹이 작년 11월 46위로 곤두박질쳤다”며 “각국의 슈퍼컴 성능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6년간 약 3000억원을 들여 구축하는 슈퍼컴 6호기 목표 성능은 600페타플롭스다. 그는 “최근 한국 증시를 달구고 있는 2차전지 산업 관련 신소재 검증, 차세대 반도체 구조 설계 등도 모두 슈퍼컴으로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김 원장이 요즘 가장 주시하는 기술은 양자컴퓨터다. 양자컴퓨터는 디지털 비트(0 또는 1)와 달리 0과 1 사이 확률적으로 변하는 비트(큐비트)를 쓴다. 양자컴은 이론상 슈퍼컴보다 수억 배 이상 빠른 연산이 가능하다.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제각기 방식으로 양자컴 개발에 한창이다. 모두 챗GPT와 같이 ‘자연어 이해와 생성 기술(NLP·자연어 처리)’을 세계에서 주도해온 기업이다. 김 원장은 “작년을 기점으로 양자컴 개발 속도가 어마어마해졌다”며 “양자컴과 초거대 AI가 결합되면 파급력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 원장은 예전 공군 전산장교 재직 경험을 살려 최근 국방부, 방위사업청 등과 함께 데이터 기반 무기 정비체계 선진화에 나섰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KOTRA, 농촌진흥청 등 빅데이터 분석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공공 기관 지원도 늘리고 있다.
대전=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