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북한에 책임을 묻기 위해 어제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이번에도 비토권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두둔하면서 의장 성명조차 채택하지 못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서방국들만 참여한 규탄 성명을 따로 채택했을 뿐이다. 올 들어 유엔 결의를 17번 위반한 북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안보리 회의는 번번이 중·러의 벽에 가로막혔다.
어이없는 것은 중·러의 반대 이유다.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는 “미국이 핵항모와 폭격기 등을 동원해 한반도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한 것이 북한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며 도발 탓을 미국에 돌렸다. 주유엔 러시아대사도 미국 책임을 부각했다. 한·미 훈련이 강화된 것은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 때문이라는 것을 두 나라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안보리 결의를 상습적으로 위반하며 핵 위협을 일삼는 북한을 두둔하고 방어적 성격의 한·미 훈련을 탓하는 것은 생떼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중·러의 행태는 이율배반이다. 유엔은 2017년 11월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ICBM을 쏠 경우 대북 원유·정유 반입을 더 제한하도록 한다”는 트리거(방아쇠) 조항까지 마련했고, 중·러도 찬성했다. 그래 놓고 두 나라는 스스로 이를 짓밟고 북핵 보유의 길을 터주고 있으며, 제재 뒷문까지 열어주고 있다. 이 정도면 한반도 위기 방조범으로,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이 없다.
중·러가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북한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냉전 구도를 심화하려는 속셈이겠지만, 북핵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두 나라도 ‘핵폭탄 이웃’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북·중·러에 맞서 한·미·일을 비롯해 자유 진영의 협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참에 안보리 의사결정 구조에 대해서도 재고해봐야 한다.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우습게 알고 거리낌 없이 도발에 나서고 있는 것도 중·러가 상임이사국 만장일치제를 활용해 거부권을 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리의 이런 망가진 구조로는 한반도 평화를 보장할 수 없고, 기대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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