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빌런은 배우 신재하로 시작해 신재하로 끝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tvN '일타스캔들'에서 섬뜩한 연쇄살인범 지동희를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악역으로 활약했던 신재하는 15일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 시즌2(이하 '모범택시2')에서도 '악의 실무자' 온하준으로 분해 피도 눈물도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모범택시2' 마지막 회에서는 김단우라는 온하준의 진짜 이름이 공개되고, 그가 범죄 집단에 납치돼 살인 병기로 키워질 동안 그를 찾아 헤맨 부모의 가슴 아픈 사연이 공개되면서 시청자들의 동정심까지 이끌어냈다.
'모범택시2'는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를 위해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가 사적 복수를 대행한다는 콘셉트의 작품.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했지만, 극 중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든 사건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가 아니냐"는 반응까지 나왔다.
신재하가 연기한 온하준은 '모범택시2'에서 등장하는 모든 악행을 진두지휘했다. 금산회 교구장(박호산 분)의 아들로 불리며 모든 검은 일을 직접 설계하고, 실행했지만 번번이 김도기(이제훈 분)에 의해 실패하면서 광기를 보인다.
극 초반 선량한 청년인 척 무지개 운수에 위장 취업하고, 이후 정체를 드러내며 각종 악행을 저지른다는 점에서 앞서 종영한 '일타스캔들'에서 선량한 조수에서 연쇄살인 행각이 드러나는 지동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전개와 설정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신재하는 "두 작품이 이렇게 바로 연이어 방송될 줄 몰랐다"면서도 "이 작품들을 보고 내가 어떻게 잴 수 있겠나.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출연 후일담을 전했다.
"촬영이 거의 동시에 시작해 비슷하게 끝났어요. 군 전역 전에 '일타스캔들' 출연이 결정된 상태였고, 전역하고 나서 '모범택시2' 제안받았는데, 촬영 일정을 감수하더라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언제 전도연 선배님, 정경호 형과 작업을 하고, '모범택시' 시리즈에 출연할 수 있겠어요. 빨리 결정 내리고, 바로 촬영을 시작했죠."
군 전역 후 처음 진행한 촬영에서는 "감이 떨어져서 덜덜 떨면서 찍었다"는 신재하는 '일타스캔들'과 '모범택시2' 촬영장을 오가면서도 각 캐릭터에 완벽하게 스며들어 갔다. 여기에 '모범택시2'의 버닝썬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상의 탈의 장면을 찍기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대역 없는 액션 연기를 위해 액션 스쿨까지 다니며 숨 가뿐 스케줄을 소화했다. 회가 거듭될수록 화면 속 턱선이 달라질 정도로 살이 저절로 빠졌지만, "현장에서 선배 연기자들이 많이 도와주시고, 챙김을 많이 받았다"면서 고마움을 먼저 전했다.
"'모범택시2'의 경우 전 시즌이 워낙 잘됐고, 제가 시즌2의 빌런으로 합류한다는 사실이 처음엔 아주 부담스러웠어요. 그래도 표예진 누나, 배유람 형은 이전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고, 다른 선배님들도 제가 힘들어하는 게 당연하다고 이해해주시고 배려해주셨어요. 저를 위해 시간도 많이 내주시고요."
신재하의 노력은 '일타스캔들' 출연진들에게도 인정받았다. 전도연 주연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길복순' 상영 행사에 '일타스캔들' 출연진이 초대를 받았는데, 전도연이 신재하를 보자 대뜸 "어우, 너 나빠"라고 말했다는 것. 신재하는 "동생이 친구들에게 '집에서 너희 오빠 괜찮냐?'는 말을 듣고 온다"면서 기쁨의 미소를 보였다.
"10년 동안 연기를 했는데, 얼굴을 알리는 것보다 이름을 알리는 게 더 어렵더라고요. 이번에 '일타스캔들'과 '모범택시2'를 하면서 사람들이 '어, 신재하다'라고 알아봐 주시는 게 가장 큰 변화인 거 같아요. 항상 누군가의 아들, 동생이었는데 '이젠 어린 역할 못하겠다'고도 해주시고요. 너무 뿌듯하고 다행이다 싶어요."
'쌍끌이' 촬영을 마친 후 신재하는 꼬박 한 달을 "앓아누웠다"고 했다. 전역 후 긴장감 속에 촬영을 이어간 후유증을 제대로 앓은 것. "군대에 다녀온 후 쉬지 않고 작품을 해야 한다"는 목표로 쉼 없이 다작을 했던 신재하는 이제야 숨 고르기를 하고 새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스스로 냉정하게 봤을 때, 저는 톱스타가 될 수 있는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천천히 가야 한다고 마음먹었죠. 그런데도 일을 하다 보니 작품을 끝날 때쯤엔 불안감이 찾아오더라고요. 압박감도 심하고요. 그래서 친구들과 맘 편히 어딜 놀러 가지도 못했어요. 20대에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하지 못했죠. 군대도 전역 후 작품을 해야 한다는 목표가 짐이 됐어요. 마음의 무게가 너무 크다 보니 '이제는 그냥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자원입대했고요."
군대에 다녀오고, 출연한 모든 작품이 시청률 대박을 터트리면서 신재하는 "몇 년 치 운을 다 끌어다 쓴 거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여유 있는 미소와 연기에 대한 여전한 열정이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케 했다.
"앞으로 남은 올해 목표는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고 싶어요. 온전히 작품과 캐릭터만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요. '일타스캔들'과 '모범택시2'를 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20대 내내 짓눌린 스트레스는 없었어요. 올해도 이렇게 보내고 싶어요. 그게 저의 30대 전체의 목표이기도 하고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