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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기업에서 일했던 어느 외국인 직원의 따끔한 조언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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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한 곳인 상도그룹. 서울 중심 지역에 40층 높이의 사옥 ‘상도타워’를 세웠다. 외관은 유리로 반짝였고, 대리석을 깐 로비는 그룹 광고와 브랜드 현수막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로비를 오가는 유니폼을 입은 안내원과 정장 차림에 사원증을 목에 건 직원들이 그룹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상도타워에는 상도그룹 10여 개 계열사가 기업 내 서열에 따라 순서대로 입주했다. 지주회사 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이었다. 최상층엔 회장실과 지주회사가, 최하층엔 그룹 내 규모가 가장 작으며 다른 계열사의 내부 서비스와 관련된 일을 하는 계열사가 자리했다. 규모가 큰 곳은 여러 층을, 작은 곳은 여러 계열사가 한 층을 공유했다. 이처럼 상도그룹 계열사들은 하나의 타워 안에 모였으나 매출과 직원 수, 규모 등에 따라 위에서부터 아래의 순서로 공간이 할당돼 흩어졌다.

직원들이 사용하는 책상은 그룹 로고를 새긴 맞춤형으로 제작했고 카페, 헬스클럽 등 시설도 마련했다. 타워 꼭대기엔 갤러리를 방불케 하는 조각상과 회화 작품들이 임원 회의실을 둘러싸고 있다.

새롭고 멋지게 꾸민 상도타워 덕분에 상도그룹은 다른 기업과는 다르다는 ‘구별 짓기’를 통해 세계적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창출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도타워 내에서 조직 간 다른 유형의 구별 짓기도 만들어냈다. 그전에는 어느 정도 독립적인 ‘자율 경영’이 가능했지만, 타워에 입주한 뒤엔 중앙집중화적인 새로운 기업 질서가 형성됐다. 탈위계적 기업의 이상을 이루는 동시에 새로운 위계를 은밀히 부과하게 된 것이다.

영국 셰필드대 한국학 교수인 마이클 프렌티스는 2014년부터 한국 기업에서 겪은 이 같은 사례들을 신간 <초기업>에 풀어냈다. 상도그룹이라는 이름과 책에 나오는 부서, 사람 등은 모두 가명이다. 저자는 상도그룹 지주회사 HR부서에서 근무한 경험을 통해 한국 기업 내부에서 나타나는 ‘구별’과 ‘참여’의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기존의 조직 문화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기업들이 위계를 벗어던지려 하는 도전을 ‘초기업(supercorporate)’으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관습적인 위계질서를 없애려는 기업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공정한 기준을 바탕으로 개인과 조직을 ‘구별’해야 할까, 아니면 협업과 같은 동등한 ‘참여’를 장려해야 할까. 저자는 세대 간 갈등 해결 등 직원들의 욕구를 반영해 수평적인 조직 체계를 구축하려고 할 때 모순적으로 새로운 구별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책은 상도그룹 사례를 기반으로 여러 이론과 모델, 학문적 요소들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탈위계 사회에서 한국 기업과 직장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문장과 구성이 꽤 복잡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저자는 초기업으로 나아가려는 한국 기업에 이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구별과 참여의 탈위계적 개념이 한국 경제 지형 전반에 부정적 위계 구조의 다른 형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업 위계가 부정적이고 무가치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동시에 그런 구조 안팎의 많은 사람에게 성취의 기회로도 보일 수 있다.”

이금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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