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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긴축 여파로 올 1분기 글로벌 인수합병(M&A) 규모가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지만 원자재 기업들은 공격적인 M&A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2년간 금,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으며 현금 유동성이 크게 늘어서다. 실탄을 확보한 원자재 기업들은 소비 둔화에 대비해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셰일 분지 노리는 엑슨모빌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세계 1위 석유회사인 엑슨모빌은 미국의 셰일 석유 시추업체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시스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양측은 M&A를 위한 비공개 사전 협의를 이미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파이어니어 인수 가액이 640억달러(약 84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파이어니어의 시가총액 517억달러(11일 기준)를 웃돈다. 두 회사의 합병이 성사되면 1999년 엑슨과 모빌의 M&A 이후 글로벌 석유업계 최대 규모의 거래가 된다. 당시 엑슨은 835억달러를 들여 모빌을 흡수합병했다.
실탄은 확보한 상태다. 엑슨모빌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치솟자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영업이익이 712억달러를 기록했다.
파이어니어는 셰일 석유의 주요 산지인 미 텍사스 남부 퍼미안 분지에서 석유 탐사 및 시추를 하는 기업이다. 퍼미안 분지에서 시추량이 두 번째로 많다. 시추 효율성도 높은 편이다. 지난해 배럴당 잉여현금흐름(현금 순유입액)이 30달러에 육박하며 업계 1위를 차지했다.
○광산업계도 M&A 경쟁
광산업계에서도 대규모 M&A를 추진하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세계 1위 금 채굴 기업인 미국의 뉴몬트가 호주 광산업체 뉴크레스트에 인수를 제안했다. 인수가액으로 195억달러(약 25조8433억원)를 제시했다. 지난 2월 170억달러를 제안했지만 뉴크레스트가 이를 거부한 뒤 인수가를 높였다.WSJ에 따르면 뉴크레스트가 장부 실사를 뉴몬트에 허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사실상 M&A에 합의하는 모양새다.
스위스 광산업체 글렌코어도 캐나다 광산업체 텍 리소스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텍 리소스 주주들에게 인수가액으로 총 230억달러를 제안했다. 82억달러 상당의 현금과 합병한 뒤 설립되는 회사의 지분 24%를 제공하는 게 조건이다. 오는 26일 이사회에서 합병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광산 기업들도 현금 보유량이 크게 늘자 M&A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년간 우크라이나 전쟁과 공급망 혼란으로 인해 구리, 금 등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며 이익이 크게 늘었다. 확보한 자금으로 경쟁업체를 인수해 몸집을 불린다는 관측이다. 소비 둔화에 맞서 시장 점유율을 지키려는 것이다.
뉴몬트와 글렌코어가 M&A에 나선 또 다른 이유로는 구리가 꼽힌다. 풍력발전기, 전기차 등 신재생에너지와 연관된 산업에 구리 배선이 쓰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에너지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광산업계가 사업을 다각화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몬트는 뉴크레스트가 소유한 호주 구리 광산을 확보하려고 한다. 글렌코어는 텍 리소스가 보유한 캐나다 구리 광산을 노리고 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