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11일 10:0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KH그룹 계열사 5곳 연이어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자 핵심 사채권자인 메리츠증권이 즉각 투자금 회수에 나섰다. 채권 회수 순위에서 중순위에 해당하는 메자닌(주식관련사채) 투자자지만 1조원이 넘는 부동산 자산을 담보로 잡아 ‘안전판’을 마련해둔 만큼 원금 회수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KH그룹 계열사 5곳이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자 그동안 KH그룹에 대규모 자금 지원을 하며 ‘우군’ 역할을 자처하던 메리츠증권이 투자금 회수에 나섰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KH그룹에 EOD(기한이익상실)를 통보하고 현재까지 약 1000억원 규모의 담보권을 행사했다”며 “이후 조기에 회수할 수 있는 자산에 우선순위로 담보권을 행사에 투자금을 최대한 신속하게 회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IHQ와 KH필룩스, KH전자, KH건설, 장원테크 등 5곳은 이달 초 모두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매매 거래가 정지됐다. 지난해 사업연도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의견 거절 또는 감사 범위 제한으로 인한 한정의견을 받았다.
메리츠증권은 즉각 자금 회수에 나섰다. 통상 상장사가 상장폐기 기로에 놓였을 때 메자닌 투자자가 상장 유지를 위해 채권 조기 회수 등을 자제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메리츠증권이 KH그룹에 대하여 1조원이 넘는 부동산 자산 등을 담보로 잡아둔 만큼 굳이 소모전을 펼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메리츠증권은 KH그룹이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메자닌 투자를 통해 돈을 지원해온 곳이다. 그 대가는 부동산 담보였다. 무자본 M&A에 자금을 제공하면서 부동산 연계 유가증권과 현물을 담보로 잡아 메리츠증권이 손실이 볼 가능성은 ‘제로’인 무위험 투자였다.
메리츠증권은 작년 KH그룹이 강원 알펜시아리조트를 인수할 당시 약 3200억원 규모의 인수 자금을 지원했다. KH필룩스·IHQ(각각 350억원), KH건설·KH전자(각각 150억원) 등이 발행한 CB 1000억원을 인수해주는 방식이었다. 부동산 담보대출로도 2200억원을 지원했다.
메리츠증권은 또 6월 IHQ(200억원), KH건설(100억원) 등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인수했다. 해당 거래에도 KH그룹 계열사가 상호 보증 형태로 부동산 자산 등을 담보로 제공했다.
이를 통해 메리츠증권이 담보로 확보한 자산은 알펜시아리조트 부동산 자산을 비롯해 상지카일룸 분양 신탁, KH필룩스 본사 건물 등 KH그룹 계열사가 보유한 주요 자산을 담보로 잡았다. 메리츠증권이 KH그룹 계열사에 지원한 자금은 3000억원대 중반이지만 그 대가로 잡은 담보 규모만 1조원이 훌쩍 넘는 규모였다.
외부 자금 수혈이 절박했던 KH그룹과 무위험 메자닌 투자를 통한 차익을 노린 메리츠증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사채권자가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해둔 셈이다. 통상 상장폐지가 이뤄지면 선순위 채권자들은 대부분 원금 회수가 가능하지만, 주식과 채권 중간 성격인 메자닌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원금손실을 보는 경우가 대다수다. 메자닌은 선순위 채권보다 상환 순위가 뒤로 밀려서다.
KH그룹이 휘청이자 메리츠증권이 마련해둔 '안전판'이 곧장 작동한 모습이다.
다만 알페시아리조트 등에 대한 담보권 실행은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시장의 평가다. KH그룹은 작년 알펜시아리조트를 7115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시세보다 헐값에 인수했다는 평가가 나오며 입찰방해 및 담합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메리츠증권이 알펜시아리조트를 공매 등을 통해 이보다 싸게 시장에 내놓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메리츠증권이 알펜시아리조트 담보신탁에 매긴 감정가는 7927억원이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담보 자산을 현금화한다는 방침은 분명하다”며 “알펜시아리조트에 대한 담보권까지 행사할 경우 시장에서 평가하는 가치에 따라 매각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