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IT)업계를 휩쓸었던 임금 인상 열풍도 이렇다 할 효과가 없었다. 엔씨소프트 직원들이 민주노총 산하로 게임업계 다섯 번째 노조를 출범시켰다. 대표와 직원 간 100배 이상으로 벌어진 연봉 격차가 노조 설립에 불을 지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10일 엔씨소프트 소속 근로자들은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화섬노조) 산하 형태로 노조를 정식 출범했다. 노조 명칭으로는 ‘우주정복’이 선택됐다. 우주정복은 고용 안정, 근로환경 개선, 투명한 보상체계 확립 등을 노조 설립의 이유로 들었다. 이 노조는 “엔씨소프트의 핵심 가치인 도전정신, 열정, 진정성 등이 가족경영에 기반을 둔 수직적·관료적 문화로 훼손됐다”며 “임원 중심의 관료적 조직 문화와 만연한 불법 연장근로, 권고사직, 대기발령 등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업계에 따르면 우주정복에 참여 의사를 밝힌 엔씨소프트 직원들은 약 85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연말 기준 엔씨소프트 직원 수(4789명)의 6분의 1을 웃도는 수준이다. 우주정복 측은 지난달부터 직원간 물밑 작업을 거쳐 노조 설립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노조는 게임업계에서 탄생한 다섯 번째 노조다. 2018년 넥슨, 스마일게이트에서 나란히 노조가 탄생한 데 이어 2020년 엑스엘게임즈, 2021년 웹젠 등이 그 뒤를 따랐다. 화섬노조 산하 IT위원회엔 이들 게임사의 노조와 네이버, 카카오 등의 노조가 함께 소속돼 있다.
엔씨소프트 노조의 출범은 지난해 IT업계에 불었던 임금 인상 열풍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엔씨소프트는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을 2021년 1억600만원에서 지난해 1억1400만원으로 7.6% 인상했다. 지난해 한국의 물가상승률(5.1%)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올해에는 일부 저성과자를 제외하면 연봉 5.1% 인상이 예정돼 있다. 이 또한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예상한 한국의 올해 물가상승률(3.2%)를 웃돈다.
업계에선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직원들의 임금 격차가 직원들의 노조 설립에 불을 지핀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해 연봉으로 직원 평균 연봉보다 108배 많은 123억8100만원을 받았다.
이주현/곽용희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