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사에서 1980년대는 ‘민중미술의 시대’로 기억된다. 민주화 운동이 확산하면서 작품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작가들이 급격히 늘어난 시절이다. 정치의 과잉이 불가피했던 상황이었지만 어느 화가는 평생을 빛의 본질에 천착했고, 어느 화가는 철사와 실을 통해 고유의 작품 세계를 열었다.
서울 통의동 아트스페이스3가 갤러리 개관 10주년 특별전 ‘컬러풀 한국 회화-조화에서 정화까지’로 이들 작가 8명을 조명한 이유다. 이숙희 아트스페이스3 대표는 “시류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들”이라고 했다.
전시는 4가지 섹션으로 마련됐다. 전시를 기획한 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이 작가들을 두 명씩 엮어 구성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고(故) 하동진과 원로 작가 강하진의 작품은 그 시작이다.
이들 작품은 ‘컬러풀 한국 회화’라는 전시 제목을 실감나게 한다. 다채로운 색과 빛의 향연으로 관람객의 눈길을 잡아끈다.
하동진 작품은 여러 가지 색깔의 농도를 일정하게 바꾸는 그라데이션이 돋보인다. 작가 생활의 대부분을 빛의 특성을 탐구하는 데 바쳤던 그의 삶을 가늠케한다. 트위드 패턴이 떠오르는 강하진 작품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여러 가지 색깔이 보인다. 캔버스 위에 점을 찍고 지우는 행위를 통해 자연의 근원을 나타냈다.
시선을 옆으로 옮기면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추상화들이 걸려있다. 그동안 절제의 미를 추구해왔던 이봉열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만든 신작에서 목화 봉오리를 캔버스에 담았다. 고향 황해도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울퉁불퉁한 표면 위 목화꽃과 목화 솜으로 나타냈다.
‘한국스러운 추상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던 박재호 작가의 파스텔톤 추상화에선 특유의 서정성이 느껴진다.
실험적인 기법으로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찾아간 작가도 있다. 최상철 작가는 물감을 묻힌 돌을 캔버스 위에서 1000번을 굴렸다. 붓이라는 상징적 도구를 버리고 우연성을 더한 작품이다.
그 옆 오수환 작가는 서예에서나 볼 법한 선을 활용해 추상화를 그렸다. 동양과 서양의 절묘한 조화다.
마지막 섹터에선 다시 다채로운 색깔로 돌아온다. 거친 붓질로 캔버스에 여러 색깔을 층층이 쌓은 이강소의 작품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새로운 색깔이 보인다.
거칠고 역동적인 마티에르(질감)이 인상적인 권순철의 작품은 고뇌와 혼란, 환희 등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전시는 4월 15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