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나라 국민이 더 행복하다
돈과 행복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이번 행복도 조사에서 7.8점으로 1위에 오른 핀란드는 1인당 GNI가 5만1178달러로 한국의 1.5배다. 2~5위로 집계된 덴마크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네덜란드도 1인당 GNI가 5만~7만달러에 이르는 고소득 국가다. 반면 저소득 국가가 많은 아프리카에서는 행복도가 6점을 넘은 나라가 하나도 없었다.돈이 있으면 의식주 등 기본적인 물질·생리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복감을 느끼긴 어렵다. 건강도 돈과 연결된다. 부유한 나라의 국민은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 이 덕분에 기대수명이 길고 유아 사망률이 낮다.
부유한 나라의 국민은 더욱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한다. 환경 오염을 줄이는 데 더 큰 비용을 쓸 수 있다. 여가에 취미활동을 즐기고, 여행을 다니고, 공연과 전시를 관람하는 것도 어느 정도 물질적 조건이 갖춰졌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이스털린의 역설
돈과 행복이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기는 하지만 돈에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용한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란 재화와 서비스를 한 단위 더 소비할 때 추가로 얻는 만족감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말한다. 월 소득이 100만원인 사람이 100만원을 더 벌게 된다면 만족감이 클 것이다. 그러나 월 소득이 1억원쯤 되는 사람에게 추가로 주어지는 100만원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돈이 많을수록 행복감이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돈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이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것이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리처드 이스털린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1974년 30개국 국민의 행복도를 연구했다. 이 연구에서도 일반적으로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행복감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정 소득이 넘는 국가 중 고소득 국가와 저소득 국가를 비교했더니 소득과 행복도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았다.
돈 많아도 행복하지 않다면?
많은 경제학자가 돈과 행복의 관계를 연구했다. 프린스턴대 교수인 대니얼 카너먼과 앵거스 디턴은 2010년 연 소득이 7만5000달러를 넘어서면 돈이 행복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그런데 카너먼이 최근 조금 다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봉 10만달러 이상~50만달러 미만 구간에서도 소득이 증가할수록 행복감이 커진다는 것이다. 단, 소득이 높아도 ‘불행한 소수’가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친지를 잃었거나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었다. 돈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불행이 있는 것이다.사회적 비교도 중요하다. 이스털린은 학생들에게 1) 자기는 10만달러를 벌고 동기들은 20만달러를 버는 것과 2) 자기는 5만달러를 벌고 동기들은 2만5000달러를 버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3분의 2가 두 번째를 택했다. 소득의 절대 금액보다 주변과 비교한 상대적 수준이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하버드대는 1938년부터 학생 268명을 70년간 추적 관찰해 ‘행복의 조건’ 일곱 가지를 제시했다. △성숙한 방어기제(고난에 대처하는 자세) △안정적인 결혼 생활 △금연(또는 45세 이전 금연) △적당한 음주(알코올 중독 경험 없음) △규칙적인 운동 △적당한 체중 관리 △교육 연수(평생교육)였다.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직 충분히 많은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다른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기 때문일까.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