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으로 이뤄진 OPEC+ 회원국들이 기습적으로 추가 감산을 결정하자 미 백악관이 즉각 반발했다. 시장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이유에서다. 78년간 이어진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동맹 관계에 금이 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美 백악관 "현명치 못한 선택"
2일(현지시간) 안드리엔 왓슨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OPEC+ 회원국의 감산 결정에 대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OPEC+의 감산 결정은 현명하지 않다(ill-advised)"고 비판했다.왓슨 대변인은 "지난해 여름 최고점을 찍은 미국 내 휘발윳값은 지금까지 갤런(약 3.8ℓ)당 1.5달러 이상 큰 폭으로 떨어졌다"며 "에너지 산업이 미 경제 성장을 지원하고 소비자 가격을 낮출 수 있도록 모든 공급업체와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날 OPEC+ 회원국들은 다음 달부터 하루 116만배럴 자발적으로 감산하겠다고 결정했다. 지난해 OPEC 소속 산유국이 하루 200만 배럴 감산하기로 합의한 것과 러시아가 지난달 발표한 하루 50만배럴 감산량을 합치면 연말까지 하루 336만배럴 줄어든다.
78년 사우디-미국 동맹에 균열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관계는 더 악화 전망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 50만배럴 감산할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는 이날 감산 이유를 "석유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미국의 주장과 상반되는 내용이다.이번 감산 결정은 지난해 10월 OPEC 회의에서 결정된 감산 정책과 별개로 시행되는 추가 조치다. 당시 OPEC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증산 요청을 묵살하고 하루 200만배럴 감산을 결정했다. 바이든 정부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려 전략비축유(SPR)를 1000만배럴 추가 방출하며 감산에 대응했다.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기를 잡은 뒤 양국의 관계가 개선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번 결정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냉각될 것으로 관측된다. 사우디의 대규모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을 추진하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대규모 자금을 모으려면 유가를 올려야 하는 입장이다.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정부는 어떻게든 인플레이션을 완화해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은 이복형인 빈 살만 왕세자의 '비전 2030'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끌어모을 계획이다"라며 "원유 공매도 세력에 대한 우려가 이번 감산 결정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탈(脫)미국 전략이 드러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RBC캐피털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 애널리스트는 "이번 결정은 사우디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를 잘 보여준다"며 "중국에 밀착하고 있는 사우디는 미국에 '단극 세계는 끝났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대응책은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번 감상에 따라 미 정부의 대응책은 크게 세 가지다.지난해 10월처럼 전략비축유(SPR)를 대거 방출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유 가격이 치솟자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SPR을 1억 8000만배럴을 방출했다. 다만 지난해 사상 최대치를 방출한 탓에 올해 즉각적인 대응은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석유업체를 압박하는 대책도 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석유업체들이 과도한 이익을 챙겼다고 비판해왔다. 정부가 직접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거나 석유 수출을 제한하는 식으로 기업을 옥죌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시장 교란이 나타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이 OPEC+ 국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 상원 법사위원회가 5월 통과시킨 ‘석유생산수출카르텔금지(NOPEC)’ 법안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유가 담합으로부터 자국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OPEC+ 국가들을 상대로 미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 법안이 효력을 얻으려면 상·하원 본회의를 거쳐 대통령 서명까지 받아야 한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의 로비 등 변수가 많아 법안이 최종 통과될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