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자 시절 필자는 ‘완벽주의자’였다. 이름을 걸고 나가는 모든 일에서 누구나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길 바랐다. 공신력 있는 자료라도 최초 자료를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모든 일에는 맥락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흐름이 끊기면 수정만으론 최선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없다고 믿었다. 중간에 확신이 들지 않는 내용이 포함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업무시간이 다른 실무자보다 절대적으로 많았다. 피로가 누적됐지만 일상에 무리가 되진 않았다. 결과물에 대한 타인의 인정이 새로운 열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업무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무엇보다 대표의 업무 범주가 넓다. 리더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살펴야 한다. 실무진의 질문에 적합한 답을 주기 위해선 경영 전반을 두루 알아야 한다. 단 하나의 분야에만 치중하면 균형감이 떨어진다. ‘위임을 잘하는 리더가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경영서적에서 읽은 내용들을 체감하고 있다. 업무를 위임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자서전 <호암자전>을 읽었는데, 호암의 인사(人事)에 대한 단상이 인상적이었다.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 의심이 가거든 사람을 고용말라. 의심하면서 사람을 부리면 그 사람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 그리고 고용된 사람도 결코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을 채용할 때는 신중을 기하라. 일단 채용을 했으면 대담하게 일을 맡겨라.” 구성원에게 줄곧 ‘자율’과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 단락을 읽고 스스로 되돌아봤다. “나는 충분히 구성원들을 의심하지 않고, 각자 장점을 살릴 기회와 환경을 충분히 부여했는가?”
이후 ‘인재밀도’(조직에 유능한 인재가 모여 있는 정도)를 높이는 일에 집중했다. 구성원에게 일을 맡기기 위해선 어떤 인적 구성이 필요한지 소통하기로 했다. 업무일과 중 인사담당자와 보내는 시간을 늘렸다. 1on1미팅(1 대 1 면담), 커피챗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다. 구성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경영자로서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도 파악했다. 어쩌면 대표로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이제는 업무가 아니라 ‘여유의 완벽성’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회사의 방향과 성장 전략을 제시하는 건 대표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이러한 사고는 ‘여유’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인사평가와 정기 주주총회를 마치고 1주일간 휴가를 썼다. 대표가 된 뒤 처음으로 쓰는 장기 휴가다. 이번 휴가에서 읽을 도서는 미국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창립자 레이달리오의 <원칙(Principles)>이다. 여가를 보내면서 향후 어떤 원칙으로 회사를 경영할지 차분히 생각해보려는 취지에서다. 물론 휴가 중에도 업무와 단절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여유가 기업의 건강한 성장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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