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문을 연 아르떼뮤지엄 제주는 미디어 아트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핫플’(핫 플레이스)로 꼽힌다. 3년밖에 안 된 신생 박물관인데도 제주도를 찾는 이들의 관광 일정표에 빠짐없이 오르는 명소가 됐다. 이 뮤지엄의 ‘주인장’은 디스트릭트코리아. 제주 아르떼의 성공에 힘입어 전남 여수와 강원 강릉에도 잇따라 분점을 열었다.
지금은 연매출 500억원이 넘는 탄탄한 뮤지엄 기업이 됐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디스트릭트는 직원 월급을 주기 힘들 정도로 살림살이가 빠듯했다. 아르떼 제주를 짓느라 돈줄은 말랐는데, 입장료 수입이 들어오려면 1~2년을 더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보릿고개’를 디스트릭트가 이겨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있었다. 디스트릭트의 기술력과 아르떼 뮤지엄의 공익성 등을 높이 평가해 2020년부터 3년간 29억원을 지원한 것. 이 덕분에 디스트릭트는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수준 높은 미디어 아트 콘텐츠를 예정대로 만들 수 있었고, 이 작품이 들어선 아르떼뮤지엄은 420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성호 디스트릭트코리아 대표는 “그때 콘텐츠진흥원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르떼뮤지엄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K콘텐츠 ‘숨은 주역’ 콘진원
콘진원이 ‘K콘텐츠 열풍’에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미디어 아트(디스트릭트)부터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재벌집 막내아들’), 애니메이션(뽀로로)에 이르기까지 한국 대표 콘텐츠의 탄생에 큰 힘을 보태서다.콘진원은 29일 서울 동대문구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K콘텐츠, 한국 경제의 게임체인저’란 성과보고회를 열고 이 같은 콘텐츠 지원 성공사례를 공개했다. 콘진원이 한 해 만지는 돈은 6000억여원. 이 돈을 콘텐츠 제작에 투입하기도 하고, 창작 지원금을 주기도 한다.
지난해 방영된 인기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그랬다. 콘진원은 이 작품을 기획한 중소제작사 래몽래인에 5억원을 건넸다. 래몽래인은 이 돈으로 ‘재벌집 막내아들’의 지식재산권(IP) 50%를 확보했다. 돈 많은 방송사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IP를 전부 가져가는 일반적인 드라마 제작 방식과 다른 모습이다.
콘진원은 채널 ENA와 넷플릭스를 타고 국내외 드라마 팬들의 마음을 흔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숨은 도우미 역할도 했다. 이 작품을 만든 에이스토리는 콘진원의 ‘방송영상진흥재원 융자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은행에서 저금리로 57억원 규모의 대출을 받았다.
이 드라마를 집필한 문지원 작가도 콘진원의 지원을 받은 경험이 있다. 문 작가는 2013년 콘진원의 ‘창의인재동반사업’의 멘티로 참여해 8개월 동안 매달 100만원을 받았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신인 작가가 창작에 집중하는 데 상당한 힘이 됐다”고 그는 콘진원에 고마움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뽀로로’가 글로벌 캐릭터가 된 데도 콘진원이 한몫했다. 콘진원의 해외 진출 현지화 지원 프로그램 대상이 된 뒤 해외시장을 휘젓는 데 탄력이 붙었기 때문이다.
한국 콘텐츠 정책에 해외도 주목
콘진원의 지원을 받은 K콘텐츠가 해외에서 펄펄 날자, 한국의 콘텐츠 지원 정책에 주목하는 국가도 속속 나오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물론 미국 유럽 등 선진국도 한국의 콘텐츠 지원 정책을 ‘스터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 나라의 민간 기업들이 자국 정부에 “한국의 콘진원과 같은 지원정책을 펼쳐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애덤 스타인먼 미국 워너브러더스 부사장은 “한국의 콘진원처럼 제작자에게 우호적인 정부기관을 다른 나라에선 본 적이 없다”며 “창작자의 요구에 맞춰 시시각각 도와주는 정부기관은 전 세계에 콘진원이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플뢰르 펠르렝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도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인 성공은 확고한 공공정책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조현래 콘진원장은 “K콘텐츠 수출액은 지난 3년 동안 32%나 늘어나며 한국 수출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고 있다”며 “그동안 드라마 제작에 지원금을 집중 투입했는데, 앞으로는 신기술을 접목한 콘텐츠에 지원액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