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코미디는 호불호가 명확하다. 황당하고 기괴한 설정으로 쓴웃음을 유발할 뿐이라며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지적 자극을 무기로 사회에 통렬한 울림을 전해줘서 좋다는 사람도 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영화 ‘화이트 노이즈’(사진)는 블랙 코미디 애호가들이 바라는 고유의 매력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이 작품은 영화 ‘결혼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은 노아 바움백 감독이 만들었다. 출연진도 화려하다. ‘결혼 이야기’ ‘하우스 오브 구찌’ 등으로 팬층이 두터운 배우 애덤 드라이버가 함께 호흡을 맞췄다.
영화는 미국 출신 소설가 돈 드릴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제목 ‘화이트 노이즈’는 ‘백색 소음’이란 뜻이다. 작품의 배경은 1970년대 미국 중서부의 한 마을이다. 이야기는 대학교수 잭(애덤 드라이버)과 그의 아내 바벳(그레타 거윅), 네 명의 자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잭은 히틀러를 연구하는 교수인데도 독일어를 잘 못 한다. 그래서 이런 사실이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한다. 그의 네 번째 아내 바벳은 건망증 때문에 아이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평온하게만 보이던 가족에게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하나는 바벳이 먹는 약과 관련된 사건이다. 바벳의 건망증 증상을 수상하게 여기던 딸은 ‘다일라’라고 적힌 약통을 발견한다. 이후 수상한 약에 담긴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며 가족의 불안과 갈등이 고조된다. 또 하나는 잭에게 발생한 일이다. 갑자기 마을에 큰 사고가 일어나며 독성 화학 물질이 퍼진다. 피난을 가던 잭은 화학 물질에 노출되면서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에 시달린다.
감독은 죽음에 대한 현대인의 깊은 불안을 참신하고 독특한 과정으로 드러낸다. 히틀러를 연구하는 잭과 엘비스를 연구하는 동료 교수가 함께 학생들 앞에서 펼치는 강연은 인상 깊다. 감독은 죽음, 폭력성 등에 대한 견해를 이들의 강연을 통해 드러낸다.
영화엔 유독 슈퍼마켓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슈퍼마켓은 물질주의와 상업주의를 표상하는 공간이다. 감독은 현대인들이 크나큰 불안을 억누르면서 물질주의 안에서 안락함을 느끼고 안주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배우들의 자연스럽고도 섬세한 연기 덕분에 다행히 그 정도가 크지 않지만 ‘난해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어려운 설정과 대사가 많다. 블랙 코미디 장르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지금보다 약간은 편안하고 쉽게 다가갔어도 좋았을 것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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