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재건축·재개발 조합이 보유한 아파트 보류지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보류지는 집값 상승기에는 숨겨진 알짜로 통했지만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주택 수요자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가격을 조금씩 낮춰 재공고해도 유찰이 계속되자 일부 조합에서는 아예 공식 매각 공고를 포기하고 부동산 중개업소에 ‘대신 팔아달라’고 내놓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강남권 보류지 잇따라 유찰
2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거여2-1구역을 재개발한 ‘송파시그니처 롯데캐슬’(2022년 1월 입주)에서 최근 접수한 보류지 매각 결과 10가구 전체가 모두 유찰됐다. 입찰 당시 84㎡(7가구)가 14억895만~14억4000만원이고, 108㎡(3가구)가 15억7205만원에 매각 가격을 책정했다. 이번 매각이 실패하면서 조합은 이르면 다음달 2차 공고를 낼 예정이다. 조합 관계자는 “가격 조정 여부를 검토해 재공고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보류지는 재건축·재개발 조합이 조합원 수 등이 달라질 것에 대비해 일반 분양하지 않고 남겨둔 물량이다. 조합은 전체 가구 중 1% 범위에서 보류지를 정할 수 있다. 최초 분양가보다는 높지만 시세 대비 저렴한 가격이 매력이다. 청약통장도 필요 없다. 부동산 시세가 오를 때는 인기가 많지만, 침체기에는 유찰이 흔하게 일어난다.
송파시그니처 롯데캐슬 유찰의 원인은 인근 시세 때문으로 보인다. 거여동 A공인 관계자는 “전용 84㎡ 기준으로 최소 15억원대 호가가 형성돼 있어 조합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보류지를 내놓은 게 맞다”면서도 “지은 지 10년 남짓한 인근 단지 같은 면적대가 12억원대에 팔리다 보니 인기를 끌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 신길3구역을 재개발한 ‘더샵파크프레스티지’(2022년 7월 입주)도 지난 6일 두 번째로 올린 보류지 입찰공고에서 주인을 찾지 못했다. 올 1월 1차 매각공고 당시 전용 59㎡(13층)와 전용 84㎡(19층) 매각 금액보다 각각 1억3000만원, 1억6000만원 내린 11억7000만원, 14억4000만원으로 2차 매각공고를 냈다. 조합 측은 “3차 공고를 내는 것을 검토하고 있지만, 조합 사정상 가격을 더 내리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찰 거듭되자 중개업소에 맡겨
여러 번 보류지 유찰을 겪은 조합은 ‘n차 반복’에 지쳐 아예 중개업소에 맡기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강남구 대치2지구 조합은 ‘대치 르엘’(2021년 입주)의 보류지 2가구를 작년 4월부터 지난달까지 다섯 번이나 매각공고를 냈다. 5차 매각공고 최저입찰가는 전용 59㎡가 19억2600만원, 전용 77㎡가 23억7600만원이다. 1차와 비교하면 각각 4억2800만원, 5억2800만원 내린 가격이다.2020년 말 입주한 서초구 래미안 리더스원(서초우성1차 재건축)도 2021년 2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다섯 차례나 전용 114㎡ 2가구의 보류지 매물을 공고했지만 허사였다. 조합은 ‘강남역 대장주’라는 상징성을 내세워 입찰이 거듭될수록 가격을 올리며 자존심을 세웠지만 결국 인근 부동산에 매물을 내놨다.
경기 광명시 광명15구역을 재개발한 광명푸르지오센트베르의 경우 아예 보류지 공고 없이 지난 6일부터 중개업소를 통해 선착순 매각하고 있다. 조합 측은 “매각공고를 처음부터 내지 않기로 했다”며 “16가구 중 3가구를 중개업소를 통해 빠르게 매각했고 현재 13가구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제경 투미 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조합이 입찰을 포기하고 보류지를 부동산에 맡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매각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가 있을 수 있는데도 중개업소 매각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