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기술은 앞으로 국방·보안·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일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과 인공지능(AI) 등과 융합하면 쓰임새가 더 확장될 것이고요. 당장은 양자 기술 상용화 사례가 많지 않아도 장기적인 시각에서 지원을 늘려야 합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사진)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은 이미 양자 기술을 국가 전략 기술로 키우고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양자 기술은 양자역학을 활용해 성능을 고도화한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통신 등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하면 기존 컴퓨터에 비해 대규모 데이터를 훨씬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일부 계산 작업은 속도가 기존 슈퍼컴퓨터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질 수 있다.
양자암호통신은 양자 컴퓨터도 쉽사리 깰 수 없는 데이터 송수신 기술이다. 고도화한 수학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양자 컴퓨터의 해독을 막는 양자내성암호(PQC), 양자역학을 바탕으로 광자(빛 알갱이)에 정보를 담아 전송하는 양자키분배(QKD) 등의 연구가 진행 중이다.
양자 컴퓨터는 아직 개발 초기 단계다. 기존 컴퓨터에 양자 프로세서를 접목해 연구 중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실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게 중론이다. 양자암호통신 기술도 아직은 상용화 사례가 많지 않다. 꾸준한 지원으로 연구개발(R&D)에 나서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미국은 PQC 표준화 작업에 이미 착수했다”며 “차세대 기술을 당장 널리 활용할 수 없어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양자 기술은 국방·보안 분야 등에선 기존 체계를 일부 대체할 수 있다”며 “미국은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계획을 세부적으로 세워 R&D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한발 늦은 추격 단계다. 정부는 이달 초 2031년까지 약 9960억원을 투입하는 양자과학 기술 프로젝트 추진에 나섰다. 김 교수는 “주요 기술 분야에서 진입이 늦었다고 손을 놓고 있었다면 한국의 반도체산업도 없었을 것”이라며 “현재 단계에서 키울 수 있는 전략 영역을 찾아 꾸준히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민간 사업자의 역할도 있다”고 했다. 기업들이 양자 관련 보안 기술을 개발해 실증 사례 등을 선보이면서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에선 LG유플러스가 작년 4월 PQC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SK텔레콤·SK브로드밴드와 KT는 QKD 사업을 키우고 있다.
김 교수는 “정부와 기업 등이 장기 목표를 공유하면서 차세대 기술 R&D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혁신은 여러 요소 기술을 모아 이뤄지는 만큼 ‘큰 그림’을 먼저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블록체인, 스마트모빌리티, 웹3.0, 5세대(5G) 이동통신, 생성형 AI 등 최근 떠오른 기술 개념은 모두 초개인화 서비스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며 “이 같은 개념을 향해 각 기술이 전체적으로 엮여서 발전해야 하는 구조”라고 했다.
김 교수는 “시기마다 유행에 맞추듯 R&D 지원이 특정 분야에 쏠렸다 줄어드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중장기 로드맵을 구축해 꾸준히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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