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서 일하는 한국계 여성 임원이 여성과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며 월가의 투자 회사인 베어링스(Barings LLC)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회사의 임원들이 투자 파트너인 한국인을 '눈엣가시'(nuisance)로 묘사하는 등 아시안을 상대로 인종차별적인 언행도 일삼았다는 주장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제시카 리(사진) 베어링스 오리지네이터(자산 보유·관리 책임역)는 최근 미국 뉴욕 맨해튼의 뉴욕주 법원에 베어링스를 상대로 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규모는 밝혀지지 않았다.
소장에서 원고 측은 "성별과 국가 출신에 따른 차별이 만연한 사내 분위기로 인해 리씨가 심각하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소송 배경을 설명했다. 리 씨는 칼라일 그룹에서 상무를 거쳐 2017년에 베어링스에 입사했다. 베어링스는 뉴욕에 본사를 두고 전 세계에서 영업 중인 사모대출 펀드 운용 회사다.
리씨는 탁월한 업무 성과를 냈음에도 회사 측으로부터 공정하지 않은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소장에 따르면 리 씨는"직접 유치한 사모 대출 규모만 4.56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성과가 높았지만, 약속한 보너스를 받지 못하고 주요 업무에서 배제됐다"며 "오히려 더 낮은 성과를 낸 백인 남성 동료들에게 훨씬 더 많은 급여를 주는 등 혜택을 줬다"고 했다.
또 "같은 시기 1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낸 백인 남성 동료들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고, 일부는 오히려 임원으로 승진했다"며 "임원에게 차별에 대해 이메일로 항의하자, 하위 고과자들이 참여하는 '업무 개선 계획' 대상자가 됐다는 보복성 통보를 했다"고 덧붙였다.
리 씨 측은 주요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방해를 받는 일도 이뤄졌다고 소장에서 강조했다. 소장에서는 "지난해 영업팀과 직접 만나는 주요 회의에는 업무 당사자임에도 아예 초대를 받지 못했다"며 "대출 프로젝트 업무 수행을 위해 클라이언트 명단 공유를 요청했지만 '검색에만 수만달러가 소요된다'는 등의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했다"고 적시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베어링스의 임원들은 한국인 고객들에 대해 차별적인 언행을 하기도 했다. 한국인 투자자들과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 "(한국 투자자는) 대처가 필요한 방해 요소다" "쓸 데 없이 너무 많은 질문을 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다.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꼽히는 월가는 백인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가 여전히 만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어링스의 경우에도 임원이나 영업을 담당하는 주요 직책에 여성이나 아시안이 거의 없다는 주장이다. 리 씨는 베어링스에 여전히 재직 중이다. 리 씨의 법률 대리인인 존 싱어씨는 "탁월한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임금과 기회의 차별을 받고 승진의 기회에서도 배제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베어링스 측은 이 사건에 대해 법적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베어링스 대변인은 "직원, 고객 및 지역사회에 대한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다양하고 공평하며 포괄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정소람 특파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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