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들으면서 열심히 필기했는데 남이 쓴 것처럼 새롭다. 책을 읽고 메모했는데도 언제 읽었냐는 듯 내용이 낯설다. 열심히 기록했는데 남은 게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한 걸까?
<거인의 노트>는 삶을 ‘제대로 기록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한국 최초의 기록학자이자 유튜브 채널 ‘김교수의 세 가지’를 운영하는 김익한 명지대 교수가 썼다. 난쟁이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면 더 멀리 볼 수 있다. 기록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기록이 쌓이면 그 위에서 더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할 수 있다. 제목이 <거인의 노트>인 이유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록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방이 어지럽혀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마련. 기록으로 하루를 정리함으로써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2부에서는 ‘집중’과 ‘확장’ 등 효율적인 기록을 위한 저자의 노하우를 모았다. 3부는 학교나 직장을 비롯한 일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메모법을 정리했다. 저자는 기록에도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먼저 이루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것, 즉 목표를 기록해야 한다. 다음은 실제로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적을 차례다. 하루 시간을 일, 공부, 휴식 등 무엇으로 채웠는지 구체적일수록 좋다. 마지막으론 반복적인 루틴을 떠올리라고 조언한다. 적으면서 자신도 몰랐던 습관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메모를 비교하면 삶의 목표가 어디서부터 어그러졌는지 발견할 수 있다.
무작정 꼼꼼하게 적는 게 정답은 아니다. 김 교수는 “기록의 고수는 많이 쓰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양만 불린 기록은 가치가 없다. 가령 20분짜리 유튜브 영상 한 편을 봤다면 키워드를 두 개만 뽑으라고 한다. ‘이것만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핵심 내용만 기록하고 나머지는 다 버려야 한다.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은 기록과 민주주의의 성장을 연결 지은 대목이다. 그는 개인들이 기록을 반복하고 지속하면서 민주주의에 다가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작품의 맺음말에서 김 교수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것”이라며 “기록을 통해 나의 삶에서 내가 주인이 되는 것 역시 민주주의가 아닐까”라고 되묻는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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