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 허이!"
국악이 이렇게 신나고 유쾌했던가. 객석 곳곳에서 추임새가 터져나온다. 소리꾼이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원조 뮤지컬, 여성국극이 국립창극단 신작 '정년이'로 부활했다. 서사적인 한계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창극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국립창극단이 준비해 지난 17일 개막한 '정년이'는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목포 소녀 윤정년을 비롯한 여성국극단의 성장과 연대를 그린 작품으로, 만화는 앞서 2020년 '올해의 양성평등 문화콘텐츠상'을 받는 등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여성국극은 오늘날의 뮤지컬과 같이 소리와 춤, 연기가 어우러진 종합예술로, 1950년대 대중예술로 인기를 끌었다. 여성 배우가 모든 배역을 맡는 게 특징이다. 남인우와 이자람이 각각 연출 및 공동극본, 작창·작곡·음악감독을 맡아 무대화했다.
국립창극단은 이번 작품으로 꼭 맞는 옷을 찾았다. 여성국극은 창극 역사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여성 소리꾼들의 무대에 대한 열정과 꿈을 향한 성장 이야기는 국립창극단 단원들의 실제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고정관념을 탈피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과거 여성국극단의 모습은 웹툰의 창극화, 판소리의 현대화 등 도전을 반복해 온 국립창극단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극중극 형식으로 지루할 틈이 없다. 극중 매란국극단이 '춘향전' '자명고' 등 작품을 연습하고 무대에 올리는 과정이 전개되면서 볼거리가 풍성하다. 장구, 가야금, 거문고, 피리 등 국악기의 생생한 연주도 관객의 흥을 돋군다. 극을 보는 내내 관객들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극장 전체의 분위기가 흥겹고 유쾌하다.
매란국극단이 무대를 꾸밀 때마다 실제로 1950년대 극장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극중극이 끝났을 때 실제 공연이 끝난 줄 알고 나갈 채비를 하는 관객도 눈에 띌 정도였다.
정년이를 위한, 정년이에 의한 극이다. 윤정년 역을 맡은 국립창극단 소속 배우 이소연과 조유아의 역량이 대단하다. 국극단의 스타가 돼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당찬 모습을 비롯해 유쾌하고 꿈 많은 소녀의 모습, 꿈 앞에서 좌절했다가 다시 용기를 얻는 진지한 모습까지 그야말로 '팔색조 연기'를 보여준다. 정통 판소리부터 현대적 요소가 가미된 창작 음악, 신민요 등 다양한 종류의 소리를 약 두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내내 무리없이 소화해 낸다.
다만 정년이만 잘 보인다는 건 이 작품의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다른 주요 인물들의 입체성이 떨어지고, 매력이 덜 부각된다. 137회에 달하는 원작 웹툰의 방대한 서사를 두시간의 무대 언어로 압축하려다보니 한계가 있다. 극중 정년의 모친이자 과거 전도유망한 소리꾼이었던 채공선이나, 정년의 라이벌 허영서를 비롯한 국극단 단원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선 다소 간단하게 처리되고 지나가버린다. 그저 정년의 주변인에 그치고 말았다.
주인공 정년의 서사마저도 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꿈 앞에서 좌절했다가 다시 용기를 얻는 과정의 개연성이 조금 부족하다. 권부용과의 러브스토리도 마찬가지다. '팬심'에서 갑자기 사랑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생략된 듯한 느낌이다.
서사적인 한계는 있지만 의미있는 도전이다. 웹툰을 처음으로 창극으로 만든 것도, 여성국극이란 생소한 장르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신선하고 가치 있다. 어린 아이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에게 추천한다. 공연은 오는 29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