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편의점 냉장 쇼케이스를 가득 메웠던 캔 수제맥주 시장의 성장세가 꺾이면서 수제맥주 업체들이 주종 다변화에 나선다. 캔으로 된 수제맥주만으로는 최근 주류시장 트렌드에 대응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하이볼(술에 탄산수를 섞은 칵테일 종류), 발포주 등 새로운 유형의 주류 제품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맥주 外 제조면허 추가 취득
20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수제맥주업체 '제주맥주'는 맥주가 아닌 다른 주종의 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맥아 함량이 10% 미만인 술인 '발포주', 그리고 맥아가 아닌 사탕수수의 당분을 발효해 만드는 '하드셀처' 등을 개발 중이다. 제주맥주 관계자는 "대표 제품인 '제주위트에일'에 주력하는 동시에 발포주 등 다양한 주종을 개발해 제품 라인업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통 맥주 제조사들은 그 규모에 따라 소규모맥주제조면허나 일반맥주제조면허를 보유하고 있는데, 발포주와 하드셀처 등은 맥주와 다른 주종으로 분류되는 만큼 기타주류제조면허 등 다른 종류의 면허가 필요하다. 제주맥주는 지난 2019년 과일퓨레가 들어간 '제주슬라이스' 맥주 생산에 앞서 기타주류면허를 받은 바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음료류 영업등록을 통해 알코올 도수 1% 미만인 무알코올 음료 '제주누보'도 출시했다.
또 다른 수제맥주 제조사인 카브루는 이미 하이볼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달 초 하이블 브랜드인 '이지 하이볼'을 론칭하고 캔으로 된 '이지 블루하와이 하이볼'을 출시했다. 이달 말께 이지 하이블의 두번째 제품인 '이지 피냐콜라다 하이볼'도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기존에 갖고 있던 맥주제조면허로는 하이볼 제품을 생산할 수 없는 만큼 카브루도 기타주류제조면허를 취득했다.
○치약·구두약 맥주에 소비자 피로도↑
수제맥주 업체들이 다른 주종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캔 수제맥주 시장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나온 '곰표맥주'가 히트를 친 이후 치약, 껌부터 구두약까지 각종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한 캔 수제맥주가 쏟아져나왔다.
문제는 이런 제품들이 수제맥주 고유의 다양한 맛과 향을 강조하기보다는 색다른 브랜드나 화려한 디자인에만 몰두했다는 점이다. 비슷한 맛의, 디자인만 다른 제품들이 우후죽순 출시되면서 캔 수제맥주에 대한 소비자들의 피로감이 커졌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곰표맥주가 워낙 인기를 끌다보니 제2, 제3의 곰표맥주를 만들기 위해 편의점 등 유통채널에서 다양한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한 캔 맥주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많았다"며 "결국 너무 많은 제품들이 난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엔데믹으로 캔 맥주 시장 자체가 주춤하면서 수제맥주 업계의 실적은 악화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수제맥주 제조 상장사인 제주맥주의 경우 매년 적자폭을 키우고 있다. 지난 2020년 44억원이던 영업손실은 2021년 72억원, 지난해에는 116억원으로 확대됐다. 카브루의 영업손실도 2020년 4억원에서 2021년 11억원으로 커졌다. 곰표맥주로 흥행한 세븐브로이도 지난해 3분기 기준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6% 가량 감소한 56억원을 기록했다.
수제맥주 업체들은 맥주 외의 다양한 주종의 제품들을 통해 시장 흐름에 대응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수제맥주업계 관계자는 "하이볼 등 최근 유행하고 있는 다양한 맛의 믹솔로지(여러 술과 음료를 섞은 제품) 제품으로 라인업을 넓히며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 말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